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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18주년전교인야외예배 수용력있는교회 Capacity of the Church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7-06-18 (일) 05:14 조회 : 1934
설교일 : 6월 18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행 At 13:1-4

안디옥교회 18주년 전교인 야외예배 말씀

수용력 있는 교회 Capacity of the Church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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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1. 서로를 돌아보며, “누구신가 했습니다. 옷이 잘 어울리십니다.” 야외에서 뵈니 참 좋습니다.

 

2. 우리는 매년 교회창립주일이 되면 야외예배를 드리고, 또 안디옥교회가 갖는 의미와 비전들을 한 가지씩 말씀을 통해 나누고 있습니다.

 

3. 2017 6 20, 안디옥교회 창립 18주년입니다. 발음을 잘하셔야 합니다. ‘열여덟.이제는 성인이 된 청년기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안디옥교회는 어떤 보다 성숙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4. 에드먼튼 안디옥교회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안디옥교회의 모습을 닮고자 세워진 교회입니다. 초대 안디옥교회의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배타적이지 않고 포용력, 즉 수용성이 있는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수용성의 문제는 세상 최초로 생겨난 초대 예루살렘교회와는 아주 다른 특징이었습니다.

 

5. 그 이유가 오늘 본문 1절에 등장하는 다양한 계층의 지도자들의 모습에도 나타납니다. 5명의 교회 지도자들을 살펴보면 바나바(구브로 출신), 니게르(검다, 니그로, 라틴어) 시므온, 구레네(북아프리카) 루기오, 마나엔(헤롯왕 안디바의 젖동생, 귀족), 사울(다소 출신, 유대신봉주의자, 핍박자)입니다. 다양한 계층, 다양한 출신들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최초의 예루살렘교회는 그 구성원이 유대인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 끼리 모일 때 갖는 공동체가 가지는 힘이란게 있습니다. 그러나 동질집단 끼리만 모였을 때 갖는 단점도 있습니다. 바로 배타성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하나님의 선택은 오직 선민인 유대인에게만 있다는 구약시대의 차별성, 배타성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 결과 하나님은 박해와 핍박을 통해서 신자들을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으로 의도적으로 흩으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중심으로 개롭게 탄생한 교회가 초대 안디옥교회입니다.

 

6. 따라서 안디옥교회는 특권의식, 배타성의 모순을 가진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식의 모습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결코 유대인들 중심, 예루살렘 중심의 삶을 살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셨습니다. 차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든 부자든, 배웠든 못 배웠든, 죄인이든 의인이든, 지위가 높든 낮든, 유대인이든 이방이든 주님은 모두를 끌어 안으셨습니다.

 

7.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가지고 있는 포용력은 어떻습니까? 누구는 믿을 자격이 있고, 누구는 믿을 자격이 없습니까? 복음 앞에 백인은 더 영적이고, 흑인은 영적이지 못합니까? 어떤 나라는 복음이 필요하고, 어떤 나라는 복음이 필요 없습니까? Never. 복음 앞에는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나라도 차별이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8. 수용력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왜 중요할 까요? 수용성은 곧 복음과 선교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안디옥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수용성은 곧 선교로 이어져 이방지역인 구브로로 가게 되고... 결국은 세계 복음화의 문을 열게 되는 기초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포용력, 복음의 포용력을 가진 수용성 있는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선교는 교회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용력있는 교회는 자연적으로 이방을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수용성의 문제는 따라서 안디옥교회만이 가지는 특징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교회, 복음이 무엇인지 아는 교회는 어떤 교회든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수용성을 잃어버리면 생명력이 상실되고, 타락하며, 결국 문 닫게 되버리는 것입니다.

 

9. 이런 면에서 이민 한인교회가 한국에 있는 교회 보다 수용성이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안디옥교회처럼 고국을 떠나 이방지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용성의 문제는 이민교회의 특징이요, 강점입니다. 에드먼튼 안디옥교회, 우리교회, 나의 교회는 따라서 포용력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지역과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포용력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인 이민교회의 문제는 교회안에만 갇혀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서울대 출신들만 모인교회, 돈 있는 사람들만 모인교회, 청년들만 모인교회 .... 교회는 바다 같아야 합니다. 지역 뿐만 아니라 열방을 품어야 합니다.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품어야 합니다.

 

10. 가정을 보십시오. 누구에게나 가정이 필요하고, 가정이 평안의 장소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잘하든 못하든, 잘났든 못났든 서로서로 포용합니다. 수용성이 있습니다. Acceptance.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포용력과 수용성이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인간관계는 우리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기 쉽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1. 수용성 있는 교회로, 수용성 있는 가정으로, 수용성 있는 인생으로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