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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교제 Believers Fellowship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7-09-10 (일) 07:00 조회 : 2472
설교일 : 9월 10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요일 1Jn 1:3-4

성도의 교제 Believers Fellowship

요일 1Jn 1:3-4 / 620,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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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We proclaim to you what we have seen and heard, so that you also may have fellowship with us. And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We write this to make our joy complete.

 

 

1회 가을 추억의 명랑운동회가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어떠셨습니까? ‘좋았습니다.

도와주시고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옆 사람보며 인사합니다. “함께 함이 기쁨입니다.

 

영상(5): 명랑운동회 이모저모 - 한가족 공동체, 행복한 공동체, 참 좋았습니다.

 

미국 대각성운동을 이끌었던 경건한 사람 조지 휫필드, 그러나 그가 젊은 시절 불량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불량아였던 그가 어떻게 경건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칠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의 친구가 경건주의를 대표하는 존 웨슬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와 사귀느냐는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유다의 선한 왕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이었던 아합과 이사벨의 딸 아달랴를 자기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시킵니다. 남유다 제5대왕 여호람은 아내의 사주를 받아 우상을 적극 섬기고 그 형제와 신하들을 살해하는 등 악행을 일삼습니다. 결국 죽어서도 역대 왕들의 무덤에 들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바로 악한 여인을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사귐, 성도의 교제는 어떠해야 할까요?

 

1. 우리를 성도의 교제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모든 자들을 성도의 교제로 부르셨습니다. 3절에 보면 요한은 서신서를 쓴 목적이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사귐, 교제,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일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 가운데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바로 신앙공동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도의 교제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아주 유명한데도 여전히 외롭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위스 심리학자요 의사인 폴 투르니에“이 땅에서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 그것은 결혼하는 것과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교제 가운데로 부르셨습니다.

 


2. 성도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으로 교제를 해야 할까요? 본문 3절은 2가지 교제의 요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사귀려고 오셨습니다. 교제하려 오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오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험한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우리를 그 고통과 절망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너무나 무거워서 쓰러질 것 같은 죄악의 짐을 지고 신음하는 우리를 죄 짐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려고 우리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내 인생길에 동행해 주시고 나와 교제해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좋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즐거워진다는 사실을 압니다. 깊은 교제를 나눌수록 기쁨과 평안이 내 마음에 자리잡아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좋은 사람 중에 좋은 사람, 친구 중에 참 친구, 나를 가장 깊이 아시고 용납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십니다.

 

둘째는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전함으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신앙체험 간증 나눔을 말합니다.

 

성도의 교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앙체험을 나누는 것’입니다.

 

안디옥 초기시절 우리는 소그룹에서 매주 모여서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 다 비우기가 목표’였던 적이 있습니다. 먹고 이야기 나누고 또 먹다보니까 어느날 한사람 말합니다. ‘이렇게 먹기만 해도 되나요? 뭐하고 싶은데요? 성경공부, 예배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공부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진지하고 은혜가 되던지요! .... ㅎㅎㅎ

 

한국에서 교회섬길 때 형제 소그룹에서 운동만 계속하니까 나중에는 ‘운동은 다른 사람들하고도 할 수 있으니까 교회에서는 이제 좀 예배드리고 기도 좀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냥 해보는 소리인지 알고 싶어서 ‘괜찮다고 운동 종목을 바꾸어서 해보자’고 하니까 그러면 자기는 앞으로 소그룹모임에 안 나오겠다고. 운동만 하려면 더 잘하는 스포츠 동우회에 가입해서 하겠노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못이기는 척하고 예배를 시작했는데 얼마나 은혜가 되던지요.

 

성도들의 교제의 차별성은 영적인데 있습니다. 다른 소그룹 모임과의 차별성도 영적인 모임이라는게 특징입니다. 물론 음식, 스포츠, 취미활동과 같은 친교도 필요 합니다. 그런 친교가 필요없다거나, 나쁘다,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성도의 교제 중심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신앙의 체험을 나누는 것이어야 하고, 소그룹 모임 중심에도 예배, 기도,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영적으로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할 때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3. 교제를 통해 기쁨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성도의 교제가 잘 되면 교제를 통해서 우리는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 4절 보시면 ‘이것을 씀으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쓴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을 써서 말씀을 통해서 교제한다는 것을 말하죠. 말씀의 교제를 통해서 기쁨이 충만해 진다는 것입니다. 교제는 기쁨을 주고, 신앙생활을 더욱 힘있게 만듭니다.

 

가족이 외출해서 삼겹살 혼자 구워먹으려고 했는데 맛이 없는 것은 아닌데 많이 못먹겠더군요. 왜 그럴까요? 혼자 먹으니까 먹는 재미가 없어요. 기쁨이 없어요. 먹어도 힘이 안나요.

 

전 안양 샘 병원 원장이었던 박상은 박사는 관계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행복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만일 내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내 인간관계가 왜곡되어 있거나 뒤틀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도 관계에서 비롯된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때 우리는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며, 인간과 자연이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할 때 무서운 질병이 창궐하게 된다. 나의 장기와 조직이 뇌의 명령을 거부할 때 내 몸은 균형을 잃어버리고 작동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 존재이다.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관계, 스승과 제자관계, 이웃과의 관계 등. 우리는 이런 관계가 회복될 때 비로소 건강해지며 궁극적으로 나와 하나님의 관계 회복이 올바른 건강의 첫걸음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고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관계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 깊어지기 마련이다. 매일 아침 누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시간은 내 모든 세포가 그분 안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치유의 시간이다.

 

저희 안디옥교회가 추구하는 ‘공동체성,믿음의 공동체가 이러했으면 좋겠다는 목표는 “건강한교회 행복한교회 하나님의 가족공동체”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듯이 혼자 남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두려움이요 공포입니다. 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교정훈련을 하는 곳이 교도소입니다. 사형수라던가, 아주 중범죄를 한 사람은 보통 독방에 배치를 하는데 여간 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혼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합니다. 독방에 오래 가두어 두면 미쳐버리거나 폐인이 되어버리기도 한다죠. 다른 사람으로부터 격리가 된다든가 홀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 이렇게 사람에게는 두려움이요 고통입니다.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안정이 되는지 모릅니다다. 주변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이란 마음을 나눌 좋은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 곁에 또 행복한 사람이 삽니다. 행복공동체가 된다는 말입니다.

 

한가지 더 안디옥 목장의 비전은 ‘가족같은 목장, 친구같은 목원(like family,like friend)입니다.

1) 모임에 참석하여 교제합니다(교회정착).

2) 예배, 기도, 삶을 나눕니다(영적성숙).

3) 함께 봉사하고, 섬기며, 선교합니다(공동체적 봉사).

4) 1개 목장분가를 실천합니다(목장재생산).

 

1773년 영국 웨인스게이트라는 시골 소도시에서 저술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어렵게 목양하던 존 포쳇이라는 침례교 목사님이 런던 대도시 교회의 초청을 받아44년이상 목회하던 시골 교회를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이사 마차에 얼마간의 이사짐을 실은 다음 목사관을 막 떠나려고 하던 참에 마중 나온 성도들이 차마 더 좋은 여건의 목회지로 떠나는 목사님 내외를 붙잡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모님 메리 포쳇이 갑자기 땅에 주저앉으면서 자기 남편에게 "여보, 난 여기 못 떠나요. 이 형제 자매들을 두고 난 떠날 수 없어요"하고 통곡을 시작하자 삽시간에 교회 마당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잠시후 포쳇 목사님은 자기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보, 짐을 다시 들여놓읍시다.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있는 곳, 그보다 더 좋은 교회가 어디 있겠소." 다시 목사관으로 들어온 목사님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작시한 찬송이 221입니다.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성도의 교제는 천국의 교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