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153건, 최근 1 건

건너와서우리를도우라 Come over and help us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7-09-17 (일) 02:22 조회 : 102
설교일 : 9월 17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행 At 16:5-15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Come over and help us

At 16:5-15

=======================================================

16:9

'Come over to Macedonia and help us'

 


바울의 네압볼리, 오늘날 까발라( '') 첫 상륙 벽화 사진: 바울도착 기념교회, 성 니콜라스교회


 EMB0000117474ac


유럽복음화의 역사적 시작,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유럽이 복음화 될 수 있었을까요?



1. 성령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6절 보시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7절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9절에도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바울은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전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계속해서 아시아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5절에 보면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갔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추수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1차 전도여행때 뿌려놓았던 씨앗이 2차 전도여행중에 와보니까 싹이나서 자라는 것이 보인 것입니다. 이럴 때는 옮기는 것이 아니죠. 그런데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왜 이러실까 했지만 바울은 처음 선교사로 파송받을 때에도 안디옥교회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담임목사를 파송했던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성령님께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아시아냐? 유럽이냐?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난 누가 뭐라든 아시아에 있을래.... 계속 막으시는데도 고집을 부렸다면 유럽의 복음화라는 더 큰 문은 열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억지로 닫혀있는 문을 열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열어주시는 문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인도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려고 한다면 제일 먼저 가져야 할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이 상황 가운데서 나와 동행하시며 말씀하고 계신 성령님을 우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내 길을 이끄시는 인도자가 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깨닫게 하시고, 분별력을 주셔서 알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먼저 신뢰하고 기도하면 깨닫게 해주시고, 분별하게 하시며, 아시아로 가야 할지 유럽으로 가야할지를 보여주시고, 그 길에 동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믿는 자라면 무엇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결정해야 합니다.

 

나에게 현재 닫혀있는 것과 열려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결정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나는 성령님의 인도를 잘 받고 있습니까?

 


2. 비전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도바울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유를 눈치 채지 못한 듯 합니다. 6-7절 그래서 두 번이나 막으실 때마다 그는 아시아의 다른 도시로 행선지를 변경합니다. 그러다가 8절 드로아에 도착했는데, 그 밤에 성령께서 환상을 그에게 보여줍니다. 마케도니아, 즉 유럽사람이 나타나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입니다. 그 때에 비로서 바울은 무엇이 하나님의 계획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10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바울이 본 환상, vision이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으로 건너가서 복음을 그들에게도 전해야 하는 사명, calling이었음을 비로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인생의 비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부터 오는 비전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내 생각에서 결정된 나의 계획과 비전을 붙잡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아시아에서 열심히 죽자살자 일을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잘 받으려면 먼저 성령께서 내 인생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믿어야 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나를 향한 계획, 즉 비전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하나님은 내 인생을 향한 당신의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방법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생각과 내 뜻, 내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려고만 합니다. 아시아만 붙들고 이 도시로 저 도시로 옮겨 다니기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알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 뜻과 계획을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붙들고 일하면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내가 만든 비전을 붙들고 일하면 자꾸 인간적인 자기 방법으로 억지로 하니까 일도 힘들고 결과도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면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사람도 붙여주고, 일도 술술 풀리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일하라.내가 내 뜻과 내 계획, 내 비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얼마나 억지로 일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안되니까 넘어지고 자빠지고 불평과 원망이 나옵니다.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데, 주님을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자기가 하고 싶어 하고, 자기가 혼자 와 놓고서는. 하나님의 뜻도 계획도 비전도 아닌 자기 느낌, 자기 생각, 자기 비전을 가지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매일 투덜거리면서 하긴 해요. 주님을 위해서 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일하십시오! 그러면 힘들어도 주님이 동행하십니다. 재미있습니다. 행복합니다.

 

바울 보세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확실하니까 유럽이면 어떻습니까? 건너가는 것입니다. 나의 비전을 내려놓고 주님주신 비전 붙들고 도전하는 삶이되시길 바랍니다.

 

나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계획과 나의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발견하셨습니까?

 


3. 건너갔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발견한 바울은 즉시로 아시아에서 마케도니아로 건너갑니다. 10절 “...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케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11절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바울은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자마자 “곧, 힘써서, 직행”하여 에게해를 건너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즉시로 순종합니다. 2틀만에... 놀라운 일이죠. 순종하는 믿음과 행동하는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알고보면 비전이 없어서 어떤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비전을 잘 알고 있는데 문제는 순종하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죠. 왜 즉시로 실행에 옮기지 않을까요? ‘거기는 아시아가 아니라 마케도니아인데... 나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인데. 거기는 유럽인데. 에게해를 어떻게 건너가. 풍랑 만나면 어떻게.’ 바울이 훗날 자신의 사역을 회상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길과 바다와 사람의 위협과 헐벗고 굶주림과 추위와 고난과 핍박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을 위하여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나를 결코 가로막지 못했노라.

 

길과 바다에 위협이 있어도 인생 살다가, 주님 뜻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건너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저함 없이 건너가야 합니다. 순종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결코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태평양도 건너오셨습니다. 태평양보다 더 큰 바다가 어디있습니까? 록키산도 넘어왔고, 캐나다 대 평원도 건너왔습니다. 지금 인생에서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이민자, 유학생이 아닙니까! 도전하십시오. 건너십시오.

 

내가 지금 건너가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4. 씨앗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럽 복음화가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로 성령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비전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건너갔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씨앗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당시 수도였던 빌립보 직행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놀라왔습니다. 그곳에서 아시아 두아디라 출신의 비즈니스 우먼 루디아를 만납니다. 15절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습니다. 할렐루야! 루디아의 집은 빌립보교회의 처소가 됩니다. 훗날 빌립보교회의 후원은 바울에게 큰 힘과 위로와 기쁨이 됩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무엇보다 바울의 철저한 순종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그는 열정을 다해 복음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었죠. 루디아를 얻은 즐거움도 있었지만 16절 이하에 보면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고 고소당해 매 맞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도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감옥에서 찬송합니다. 감옥문이 열립니다. 그러나 도망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본 간수와 그의 가정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바울은 이 모든 일에 헌신을 통해서 기꺼이 씨앗이 되고자 했습니다. 자신은 씨앗처럼 땅에 떨어져 썩어지지만 주님께서 싹이나고 자라고 거두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헌신했습니다. 훗날 그는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며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씨앗이 없고, 심는 이는 없으면, 나무도 열매도 없습니다.

 

나는 땀 흘리며 수고하고 있습니까?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인도선교의 개척자요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암 케리 선교사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쿡선장의 항해일지’라는 책을 읽다가 그 속에서 알게 된 사도바울이 유럽을 복음화 시킬수 있었던 바로 오늘 본문의 성경말씀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Come over and help us.” 그리고 훗날 자신도 사도바울처럼 인도로 건너가 수많은 일들을 이루게 됩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항상 외쳤다고 합니다.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비전을 붙잡으십시오!

건너가십시오!

그리고 씨앗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