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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신앙2 부의목표 Financial Goal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7-10-29 (일) 04:57 조회 : 141
설교일 : 10월 29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잠 Pr 30:8-9

물질과 신앙2 부의 목표 Financial Goal

잠언 Pr 3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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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Keep falsehood and lies far from me;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but give me only my daily bread.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Otherwise, I may have too much and disown you and say, `Who is the LORD?` Or I may become poor and steal, and so dishonor the name of my God.

 

물질과 신앙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지난 주 첫 시간은 개론시간으로 물질이 부요할 때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서 물질을 섬기는 신앙으로 변할 수 있어서, 실제로 이스라엘이 그 길 을 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염려가 크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두 주간 종교개혁 순례팀들은 유럽 5개국 종교개혁자들의 숨결이 담겨있는 장소들을 순례하면서 왜 그들이 가톨릭에 대항해서 개혁운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뼈저리게 느끼고 배울 수 있는 특별한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개혁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말씀중심이어야 할 교회와 성직자, 성도들이 물질과 세상권력의 탐욕에 빠져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돈을 내고 면죄부를 구입하면 연옥으로 가있던 죽은 사람의 영혼도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거짓가르침을 공개적으로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순례를 하면서 오늘날 우리시대 또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부분 하나님을 이용하여 물질을 추구하고 숭배하는 경향들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기가 아니라 오늘날,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게도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물질을 섬기는 신앙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크리스천들의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염려가 크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은 올바른 물질관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두 번째로 그렇다면 ‘과연 물질을 얼마나 가져야 할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함께 나누는 시간 가지려고 합니다.

 

물질은 없어도 문제, 많아도 문제.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가져야 할까요? 부의 목표에 대한 성경적 기준은 무엇일까요?

 

1. 배부름과 가난 사이

8절 보시면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Keep falsehood and lies far from me; give me neither poverty nor riches, but give me only my daily bread.” 잠언기자는 얼마나 가져야 할까에 대한 해답으로 ‘가난하게도 말고, 부하게도 말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소유의 분량에 대한 첫 번째 가이드라인은 ‘배부름과 가난사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여 달라’고 소망합니다. 어떤 분들은 너무 소박한 삶이 아닌가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소극적인 물질관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은 잠언기자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내려줄 것’을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왜 좀 더 크고 적극적으로 ‘부자가 되게 해 달라 구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을까요? 그 해답은 바로 본문 다음 9절에 있습니다.

 

2. 하나님을 아는가 모르는가 사이

9절은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Otherwise, I may have too much and disown you and say, `Who is the LORD?` Or I may become poor and steal, and so dishonor the name of my God.물질소유의 첫 번째 기준이 배부름과 가난사이라면, 두 번째 기준은 하나님을 아는가 모르는가 사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너무 많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고, 너무 적어도 죄악에 빠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가난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자가 인생의 목표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자꾸 숫자로만 생각하고 계산하는데 익숙해 있죠. ‘배부름과 가난사이, 하나님을 아는가 모르는가 사이’가 바로 우리가 얼마나 가져야 할 것인가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3. 부자와 거지 나사로

그렇다면 이렇게 보는 기준이 왜 중요한지를 조금 더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돈을 좋아했던 바리새인들이 비웃습니다.(13,14)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돈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것도 죄라고 꾸짖으며(15),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19-31)를 말씀합니다. 이 비유속에서 예수님은 부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앞 뒤 문맥을 살펴보면 이 비유의 주인공은 거지 나사로가 아닙니다. 배부른 부자입니다. 물질과 관련하여 배부른 부자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가난한 자(거지 나사로)를 모르고 경시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날마다 호화롭게 살면서도 날마다 대문 앞에서 구걸했던 나사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개역성경은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살았다고 강조하죠. 두 번째는 하나님도 모른 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배부른 부자는 음부로 가게 됩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중심주제가 천국과 지옥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돈과 권력을 좋아하고 따라가는 사람들을 향해 꾸짖는 말씀이라는 연속성에서 보아야 합니다.

 

배부른 부자들의 문제점은 가난한 자인 이웃을 모르고 경시하며 사는 것과 하나님을 모르며 경시하며 사는 것입니다. 물질의 탐욕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이웃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힘을 가지게 되면 지배하려 하고, 신이 되려고 합니다. 세상 역사가 이것을 잘 증명하고 있지요. 그런데 놀랍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죄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삶인 것이죠.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여기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배부른 부자는 하나님도, 문 앞에 있는 이웃도, 경시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배부른 부자로 사는 것에 대한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럼 반대로 가난한 자의 문제는 없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방금 전의 비유의 주인공은 부자이지 가난한 나사로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가난한 자의 문제점은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 보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난하고 도둑질 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할까 하나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 보면 아버지가 없어서 추위에 떨며 굶주리고 있는 일곱 조카들을 위해 장발장은 한 조각 빵을 훔친 죄로 체포되어 19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게 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빵 한조각을 훔친 장발장에게 이것은 너무도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도둑질은 거기서 끝나지 않죠.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미리엘 신부로부터도 은촛대를 다시 훔쳐서 달아나게 됩니다. 너무 가난하면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거짓말과 도둑질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부자 보다 가난한 자를 더 옹호하는 입장에 설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너무 배부르면 이웃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 가난해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가난하고 도둑질 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할까 하나이다.

 

 

<결 론>

소유의 성경적인 목표는 어느 정도입니까?

물질은 없어도 문제, 많아도 문제입니다.

배부름과 가난사이, 하나님을 아는가 모르는가 사이, 그것이 우리의 소유에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이것이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