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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죽음 Moses' Death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7-11-19 (일) 08:52 조회 : 1908
설교일 : 11월 19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신 Det 34:1-6

모세의 죽음 Mose's Death

Det 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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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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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 한장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요즘 translator 번역기를 많이 소개하고 있어서 app을 하나 다운받았습니다. 무슨 단어를 넣어서 테스트 해볼까 하다가 ‘섬김’이라는 단어를 무심코 써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뜨더군요. The islands Kim 굳이 의역한다면 ‘섬마을 김씨.’ 한참 웃었습니다. 여기 말로 Idiot 번역기입니다.

 

 

2. 오늘은 이름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누구나 다 이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싫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름이 좋든 싫든 사람들은 삶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고 싶은 욕망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그 욕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호사유피 인사유명.

 

 

3. 그런데 모세의 죽음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모세가 죽어 장사되었는데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자가 없느니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어떤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왜 모세의 묘소도 찾지 못하게 했을까요? 가나안 땅도 들어가지 못하는데 너무 억울한 것 아닐까요? 모세가 누구입니까! 얼마나 많은 일을 했습니까! 그의 지도력은 얼마나 훌륭합니까! 당시 애굽과 근동지방을 다스렸던 강력한 바로 왕으로부터 이스라엘백성들을 이끌고 나온 히브리 민족의 영웅 아닙니까? 200만명이나 되는 백성들을 그것도 광야에서 이끌어 온 명장 아닙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더욱 모세를 위해서 그의 묘소를 웅장하고 화려하게 멋지게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영화롭게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모세의 마지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의 묘소도 찾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4. 아마도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아닌 모세를 섬길까봐 그런 것이 아닐까요?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 는 “사람들은 칭찬받고 싶은 본성 때문에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영웅이 되려하고, 자신의 이름이 유명세를 타고 싶어 합니다.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은 인간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11:4)

 

 

5. 이번에 유럽의 많은 도시들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마을 광장부근에는 어김없이 기념탑이 서 있었습니다. 바로 ‘무명용사의 탑’이었습니다. 마을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죽어간 선조들을 기리기 위한 탑이었습니다. 우리는 큰 일을 한 영웅들만 기억하고, 높이려는 경향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공헌한 다수의 사람들은 이름도 없는 무명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6. 그중에 소개하고 싶은 분이 바로 스위스 종교개혁가 중에 한사람인 존 칼뱅입니다. 오늘날 개신교의 태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칼빈입니다. 특별히 장로교는 칼빈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가하면 독일의 마틴 루터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종교개혁을 분석해 보면 마틴 루터는 ‘개인의 구원’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고, 칼빈은 ‘개인구원을 넘어 사회구원’까지 더 폭넓게 개혁을 주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넓은 개혁정신에 감동을 받았던 제자중 한사람이 바로 스코틀랜드 개혁장로교의 존 낙스입니다. 우리 PCC는 존 낙스의 전통을 이어받았죠. 그럼에도 존 칼빈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죽을 때에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깁니다.

 

1558년에 걸린 4일 주기 열병으로 말미암아 건강이 점차 악화되어 갔다. 그런 중에도 강한 의지력으로 열심히 일했고 자신을 인내의 극한점으로 몰고 갔다. 1564년에는 거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으며5 2일에는 파렐에게 마지막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는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내가 죽거든 묘비를 세우지 말라.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만한 일을 하지 못했다."고 유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어떤 묘비보다도 더 위대한 유산을 모든 기독교인들의 가슴에 뚜렷이 남겨 놓았다. 그는 바울 이래 그 누구보다도 세계관과 인생관에서 믿음과 행위, 교리와 삶을 잘 조화시켜 가르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 칼뱅의 묘소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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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의 묘소 707.

 

이름도 없습니다. 단지 번호만 있어서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도 더 많은 것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너무 과시하며 드러내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8. 한국의 큰 대형교회의 세습문제로 다시 한 번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구설수가 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에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사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세의 죽음과 시대상은 왜 이렇게 다른지? 지금 기독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9. 나의 삶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10. Well being vs Well dying.

이름이 아니라 믿음의 유산을 남깁시다.

재산이 아니라 삶의 유산을 남깁시다.

‘무명의 그리스도인’ 이것이 우리의 묘비명입니다.

 

 

1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