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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받는습관1 은혜의길목을지키라 Put yourself in the path of God’s grace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7-11-26 (일) 08:48 조회 : 2191
설교일 : 11월 26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히 Heb 4:16

은혜받는 습관 시리즈1

은혜의 길목을 지켜라 Put yourself in the path of Gods grace

Heb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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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영적 삶이 그분의 풍성한 은혜 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찰스 스펄전은 “인간의 노력에 의한 선행으로 하늘나라에 가려고 하는 것보다 종이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려 하는 편이 더 낫다. 따라서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전적으로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마감된다. 인생 여정을 모두 끝마치고 저 하늘 천성 문에 다다를 때, 우리가 주님께 하게 될 진솔한 고백은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말일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내가 되었고 또 내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들 모두보다 내가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그것은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 15: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경험하며 살 수 있을까?

 

1. 곰은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늦가을부터 연어사냥을 시작한다. 단백질이 풍부한 물속에 사는 연어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곰은 연어가 올라오는 길목을 지킨다. 알을 낳기 위해 물길을 따라 올라오는 길목을 지키던 곰은 도구가 없어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손쉽게 먹잇감을 잡는다.

 

내가 목회하던 집사님 큰 아들은 심방을 가면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심방 후 음식이 나오면 내 옆에 앉아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무엇이라도 주지 않을 수 없다. 이 녀석은 평소에 아끼던 음식을 목사님을 위해서 엄마가 준비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목사님 옆에만 있으면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 깨우친 것이다. 어디가 복된 자리인지를 벌써부터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뻔뻔스러움까지 겸비했다. 아주 크게 될 녀석이다.

 

2. 누가 19:1-10절을 보자.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는 키도 작았고 사람이 많아서 예수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나 키는 작았지만 그에게는 탁월함이 있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바램이다. 그는 고민하다가 돌 무화과나무 위를 기어 올라갔다. 그 이유를 성경은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했다. 삭개오는 어디를 지켜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3. 나면서 앉은뱅이였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3:1-10절을 보자.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이 사람은 걸을 수 없었지만 다른 병자들 보다 탁월했다. 그는 성전 문 옆에 항상 앉아 있었다. 성전 문앞이 도움을 받기 위한 최적의 장소임을 그는 알았기 때문이다.

 

4. 어떻게 하면 은혜를 받으며 살 수 있을까? 은혜를 받으려면 습관이 중요하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생활로 굳어진 것이 습관이다. 그런데 그 습관이 다시 반복되어지면 그것이 일상이 된다. 습관이 곧 생활이 된다는 말이다. 은혜를 받으려면 은혜받을 수 있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 은혜받는 첫 번째 습관이 바로 ‘은혜가 임하는 길목을 지키는 일’이다.

 

5. 나는 언제 은혜 받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라. 장소라면 그곳으로 가라. 어떤 예배를 통해서 은혜받는 사람이 있다. 그 예배의 자리가 은혜받는 길목인 셈이다. 그 사람은 그곳을 사수해야 한다. 깊은 골방에서 기도할 때 은혜가 임하는 사람이 있다. 그곳이 길목이다. 이런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예배드릴 때 은혜가 되는 사람이 있다. 좀처럼 혼자 예배드릴 때는 은혜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은 함께 예배드리는 곳이 은혜의 길목인 것이다. 예배를 드릴 때, 찬양을 드릴 때, 기도를 할 때, 말씀을 묵상할 때, 섬길 때, 봉사 할 때, 전도할 때, 선교할 때, 성경공부 할 때... 사람마다 은혜를 받는 길목이 약간씩 다를 수 있지만, 은혜 받으려면 그 길목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6.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삶'이라는 책에서 저자 찰스 험멜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선순위에 따라 살지 않고 급한 일에 쫓겨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못 하고 하지 말았어야 할 일에만 쫓겨 다닌다."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너무 바빠서 잠시 시간을 내어 주님과 만나 주님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채움 받는 시간을 내지 못한다. 매일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내 힘과 열심과 지혜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믿는 자이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즉 시시로 늘 언제나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가 필요함을 아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 구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임을 안다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음받는 시간들이 있어야 한다.

 

7.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의 보좌는 기도의 자리이다. 새벽에 주님의 전으로 나아가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리이다. 혹은 골방에서 주님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엎드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채움 받는 자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많은 일들,사람들과의 만남과 각종 행사와 취미 생활 이런 것들로 분주하다. 이런 분주함에 쫓겨 정말 중요한 것,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채움 받는 것을 점점 멀리한다. 그리하여 은혜없이 텅 빈 가슴으로 살아가니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별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살아간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누구보다도 바쁘게 시간을 보내셨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르치고 전도하고 치유하셨다. 그래도 예수님은 새벽 밝기 전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그 시간을 통하여 성부 하나님과 교제하며 성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로 채움 받고 하루를 계획하며 은혜의 시간을 가지셨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아가려는 것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이다. 하나님이 날마다 부어주시는 은혜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이것을 알고 날마다 은혜가 부어지는 자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대가 지불을 기꺼이 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로 부어 주실 것이다. 날마다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면 우리 하나님은 때마다 일마다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신다.

 

8. 나는 고3 때 예수전도단 광화문 찬양집회를 참석하며 말할 수 없는 많은 은혜를 경험했다. 대학 입시를 3개월 앞두고는 잠결에 찬양소리에 이끌려 교회로 가기도 했다. 삶도 어려웠고 미래도 어두웠지만 찬양을 하면 기쁨과 희망이 솟아났다. 고학하던 신학생 시절도 어려울 때면 기타를 메고 지하기도실로 들어가 눈물을 흘리며 찬양을 불러 제쳤다. 그러면 어느 센가 나도 모르게 평안이 임하고 힘이 생겨 회복되곤 했다. 군대 3년 신앙의 공백기를 마치고 방황할 때 잘 알지도 못하던 학원 강사가 나를 초대했다. 가보니까 예수전도단 찬양모임 집회였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 한번의 찬양시간을 통하여 지나간 3년의 공백을 채우고 남는 넘치는 은혜를 공급받은 것이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담담할 때면 찬양의 자리로 돌아간다.

 

9.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에드먼튼에서 처음 코스타가 열렸을 때, 지금도 한 사람을 잊지 못한다. 중년의 남자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유는 묻지 말고 코스타를 꼭 등록시켜 달라고 했다. 코스타는 청년컨퍼런스기 때문에, 또 처음 열리는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승낙을 했다. 나중에 코스타가 끝나고 그분으로부터 감사의 전화를 다시 받았다. 청년시절 미국에서 코스타를 통해서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결혼하고 캐나다로 이민와서 생활하다보니 교회를 다녀도 신앙생활이 형식적이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 은혜에 목말라 있던차 코스타를 통해서 다시한번 청년시절의 은혜를 회복하고 싶었던 것이다. 너무 감사하다고, 다시 청년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하며 울먹였다.

 

 

10. 은혜의 자리를 잊고 사는가? 떠나 있는가? 그렇다면 다시 그 자리로 나아가라. 은혜의 길목을 지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