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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까? Do I really need the gospel?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8-03-11 (일) 15:04 조회 : 298
설교일 : 3월 11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롬 Ro 7:21-25

정말 나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까? Do I really need the gospel?

Ro 7: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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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사순절기간입니다. 시작하면서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나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까?” 

"아니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아직도 복음이 필요합니까?" 

“필요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데 왜 복음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을까요?

“왜 복음에 대해서 냉랭하기만 할까요? 감격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왜 그 복음 전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을까요?

 


1. ‘내가 얼마나 추하고 형편없는 죄인’이라는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내안에, 소망이 없음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강원도 태백에 가면 탄광이 있는데 탄광의 광부들을 막장인생이라고 합니다. 40도가 넘는 깊은 땅굴 속에서 8시간 노동을 하고 그 속에서 시커멓게 먼지가 앉은 점심을 먹고 온 몸이 땀범벅이 되어도 참으며 일합니다. 공기가 너무나 탁해서 연탄가루 돌가루가 몸속으로 들어가 허파에 쌓여 나중에는 규폐증이라는 병에 걸립니다. 결국은 폐가 굳어져서 폐기능이 약해 병원 신세를 지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것이 대부분의 광부들의 운명입니다. 그래서 ‘막장인생’이라고 합니다. 여기 광부의 아들이 쓴 시가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신다.

나는 공부를 못하니까 광부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난 어차피 못 배워 광부가 되었으니 열심히 갱 속에서 일해야

되겠지마는 너는 커서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죽어도 광부는 되지 마라" 하신다.

 

얼마나 기막힌 이야기입니까? 막장인생을 사는 가슴에 피가 맺힌 아버지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갱 속에 들어오는 광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절규, 이게 아들을 못살게 구는 잔소리로 들리겠습니까? 아닙니다. 광부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일인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만은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말리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 깊은 실망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누군가에게 큰 실망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좌절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인간 그 자체가 얼마나 냄새가 나는 존재인지 알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자신의 바로 이 죄성에 대해서 탄식하고 절규합니다.

 

본문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3:10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노아시대가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시대 현재의 나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시대만이 아니라 지금도 근심하시고 한탄하고 계심을 발견합니다.


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런데 인본주의만 옳다고 판치는 세상이 왠 말입니까? ‘인간은 완벽하다. 인간이 소망이다. 어떠한 모양이라도 인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비록 그것이 신일지라도...’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인간이 곧 신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시대 말하기 가장 어려운 주제가 ‘죄의 문제’가 되어가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시대가 바뀌고 발달해도 과거나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도 여전히 결코 변하지 않을 명백한 진리는 ‘I'm a sinner.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2. 인간은 누군가를 용서하기에 앞서 먼저 용서 받아야 할 자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자력으로 절대 죄 문제를 용서받을 수도, 해결 할 수도 없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자력으로 절대 하나님이 주신 복된 삶을 회복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멸과 고통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맺어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즉 구원받는 길은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4: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람은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인생들에게 마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나아오라’고 합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아올 때 죄 문제가 해결되고 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여전히 십자가를 붙잡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 통곡하는 사람은 여전히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이루신 복음만이 유일한 해결이며 위로가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가 아니면 설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본문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나는 죄인이 아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며, 복음이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구원 받기 전에도 후에도 여전히 형편없는 죄인입니다’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날마다 엎드립니다.

 

5:20 ...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에 대한 각성이 깊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경험합니다. 언제 복음의 감격이 내게서 멀어졌습니까? '이 정도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할 때부터입니다. 자칭 의인, 바리새인화 되어갈 때 더 이상 십자가의 용서의 은혜를 붙잡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아름답게 포장하면 안됩니다. 죄를 다른 말로 대체해서도 안됩니다. 죄를 세련되게 말해서도 안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은 가짜복음입니다. 가짜 복음은 죄를 살짝 가볍게 다룹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깊은 통곡과 회개의 과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서 완전히 totally 죽어야 다시 생명이 살아나는데, 죽은 척 기절만 하게 만듭니다.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복음은 죄를 날카롭게, 깊숙이, 심지어 잔인하게 다룹니다. 마치 의사가 암덩어리를 도려내기 위해서 날선 칼로 배를 가르고 시뻘건 덩어리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죄는 죄입니다. 죄를 죄라고 말해야 합니다.


죄를 정죄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죄를 부드럽게 여기면 여길수록 우리는 십자가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4. 나아가 십자가의 복음, 예수님의 은혜를 전해야 할 필요 또한 느끼지 못합니다.

왜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까? 이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에게 죄가 없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복음이, 하나님의 은혜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딤후 1:8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인간에게 소망이 없습니다.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입어야 삽니다. 그래서 ‘복음이 생명이다’ 외치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네...’ 하면서 조롱하고 비웃고, 핍박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도 복음을 말하면 고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나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까?

"아니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아직도 복음이 필요합니까?" 

“필요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데 왜 복음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을까요?

“왜 복음에 대해서 냉랭하기만 할까요? 감격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왜 그 복음 전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을까요?

 

내가 얼마나 추하고 형편없는 죄인이라는 의식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오늘도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여전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다시 십자가 용서의 은혜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고백이 날마다 나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