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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2 어찌하여선생을더괴롭게하나이까? Why bother the teacher any more?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8-04-08 (일) 07:06 조회 : 1565
설교일 : 4월 8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막 Mk 5:21-43

아직 시리즈2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Why bother the teacher any more?

Mk 5: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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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셨습니까? 아직도 부활을 못하신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나타나지 않으셨어요. ㅎㅎㅎ

‘너무 늦었어요’라고 낙망하는 성도들을 향한 ‘아직 시리즈’ 두 번째 시간입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께 너무 늦은 때란 없다.

 

1. 야이로라는 회당장은 죽어가는 딸의 치유를 예수님께 요청했습니다.

 

죽어가는 딸, 불가능하여 보이는 일일지라도 꼭 필요한 일이면 믿음을 가지고 기도로 예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선입견과 회당장이라고 하는 권위와 체면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감추려고 하지 말고 드러낼 때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flat 된 타이어를 고쳐준다고 하기에 flat되었는지 모르고 계속 운전해서 못쓰게 된 것인데도 바꾸어 주느냐 했더니 일단 가보라고 하더군요. 창피만 당할 것 같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새것으로 흔쾌히 바꿔주더군요. 아내 왈 자기 공로라고, 헌 타이어가 새 타이어가 되었다며... 다음에는 다른 것도 가져가 봐야겠다는 소망이 생기더군요. 이번에는 손잡이 떨어진 컵을 들고 갔습니다. 혼나고 왔습니다. ㅎㅎㅎ

 

특히 타문화권에 살다보니 우리는 너무 일찍 포기하고 사는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와 야이로처럼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2. 야이로의 집으로 이동 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2살난 야이로의 딸과 12년 혈루병 앓아 온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희망적인 암시를 가져다줍니다. 일단 12라는 숫자가 이스라엘12지파,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므로 당신의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책임져 주신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딸은 죽어가고 있으나, 치료 불가능 했던 여인이 고침 받은 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일종의 상관관계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측면에서 본다면 혈루병 여인이 끼어드는 바람에 시간을 지체하게 되어 딸의 상태는 더욱 나빠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희망적이고 건설적인 어떤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여도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져서 결국에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좀처럼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야이로에게는 큰 시험, 테스트였습니다. 그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당을 구입하려고 할 때에도 이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확신이 있어서 어려운 중에도 추진을 했는데, 우리가 기도하면 할수록 오히려 발생되지 말아야 할 일들이 계속해서 새롭게 발생했습니다. 몇 년동안 팔리지 않던 건물인데 건물을 사려는 경쟁자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없는데 주인은 휴가를 가버렸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계획을 바꾸거나,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3. 이로 인하여 시간이 지체되어 야이로의 딸이 결국 죽었다는 소식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야이로에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라.’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야이로를 격려하십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자기의 소원이 사라진 후에 믿음이 시작됩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일에 믿음을 갖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우리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예수님이 주시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격려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에게 늦은 때란 없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깜깜한 밤을 밝히는 것은 전기입니다. 하지만 전기가 아무리 집안 구석구석까지 들어와도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면, 줄을 던져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이 살아나려면, 줄을 믿고 잡아야만 삽니다. 이처럼 믿음은 능력의 근원은 아니지만, 능력의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흔들릴 때에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주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달리다굼)" 하시며 아이를 살리셨습니다.

 

달리다굼이란 죽은 자를 일으키는 주님의 권능의 음성입니다. 달리다굼이란 환난 날에 기도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응답입니다. 달리다굼은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을 일으키는 주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 '달리다굼'하시면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음성을 듣고 깨어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드린 기도는 가장 적당한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응답되어 질 것입니다.

 

베토벤은 46살 때 고통받아오던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습니다. 건강은 황달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했고 그 때 사회 환경은 나폴레옹의 몰락이 가지고 온 반작용으로 향락 무드가 최고에 달해서 베토벤의 음악은 다 식어버리고 로시니의 희가극에 열광하고 있던 때입니다. 어느 날 빛을 잃은 베토벤의 음악을 생각하며 로시니가 베토벤을 찾아갔습니다. “스승이시여! 어찌하여 이 사회에 당신의 음악은 사라지고 나 같은 사람의 음악에 국민들이 열광하게 되었습니까?” 그때 바라본 베토벤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가난했으며 병고에 시달리는 처참한 모습에 로시니마저도 베토벤의 손을 붙잡고 통곡했다고 합니다. 53세가 되던 해 그는 그 고난 중에서도 교향곡 9번을 완성했고 그 제목을 “환희의 송가”로 지었습니다. 그는 듣지 못하면서도 연주했습니다. 베토벤은 이것을 마지막으로 56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08년 미국 뉴포트 연합회중교회의 담임목사인 헨리 반 다이크(Henry Van Dyke)가 바로 그 곡에다가 하나님 백성의 삶의 철학을 가사화함으로 찬송가 64장 ‘기뻐하며 찬송하세’로 재탄생 시킵니다.

 

“♬죄와 슬픔 사라지고 의심구름 걷히니 변함없는 기쁨의 주 밝은 빛을 주시네♪”

 

5. 야이로의 12살난 딸의 문제처럼, ‘내 아이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자녀만 보면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한 부모님들, 눈물이 있는 부모들을 향하여 오늘도 주님은 ‘달리다굼, 자녀여 일어나라!’하십니다.

 

청년들! 나의 꿈이 부모님과 연결되어 있다는게 답답하고 힘든 청년들, 인생의 좌표와 꿈을 잃어버린 방황하는 이들을 향하여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달리다굼.

 

달리다굼! 이 한 마디가 오늘 죽어 있는 친구와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에게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달리다굼! 이 한 마디가 믿음이 없어 두려움과 불안 가운데 사는 여러분에게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달리다굼! 이 한 마디가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이 시대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달리다굼! 이 말씀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면 ''살아나는 역사, 불신이 떠나는 역사, 회개하는 역사, 비웃음과 조롱이 놀라움으로 바뀌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함께 기도합니다.(기도의 시간)

 

6. 함께 믿음으로 선포하며 찬양합시다.

 

캄캄한 인생길 홀로 걸어가다 지치고 곤하여 내 영혼 깊은 잠이 들었었네

어두운 죄악에 길을 걸어가다 상하고 찢기워 내 영혼 깊은 잠이 들었었네

내 영혼 어둠속에 방황할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님음성

깨어라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일어나라 죄악에 잠자던 영혼아

달리다굼 깨어라 일어나 걸으라 어둠은 물러가고 새날이 다가오네 주님 오실날 멀잖았네

어둠속에 잠자던 영혼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 걸으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주님을 떠나서 세상을 향해 맘대로 고집하며 내 영혼 먼곳으로 나갔었네

인생의 어려움 절망 가운데 눈물과 한숨과 내 영혼 슬픔속에 잠이드네

주님을 떠나서 방황할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님음성

깨어라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일어나라 죄악의 잠자던 영혼아

달리다굼 깨어라 일어나 걸어라 어--은 물러가고 새날이 다가오네 주님 오실날 멀잖았네

어둠속에 잠자던 영혼 일어나라 일어나라 걸으라 달리다굼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