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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4 너와우리를구원해보라 Save yourself and us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8-04-29 (일) 08:37 조회 : 1515
설교일 : 4월 29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눅 Lk 23:39-43

아직 시리즈4

너와 우리를 구원해보라 Save yourself and us

Lk 23: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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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어요.’ 라고 낙망하는 성도들을 향한 ‘아직 시리즈’ 마지막 네 번째 시간입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께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지난 시간 우리는 <질병에 문제로 고통당하고 있는 분들을 향하여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부활의 능력으로 이겨내자!> <‘내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민하는 분들을 향하여 달리다굼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품어내자!> <‘나는 인생의 실패자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잡은 것이 없는 분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생각과 행동, 비전이 전환되어 새롭게 인생을 살아가자!> 나눔과 도전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 <새 출발을 원하지만 죄로 인한 죄책감, 과거 때문에 주저하는 분들>을 향하여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1. 두 사람

시작하며 퀴즈 하나를 내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함께 달렸던 강도중에 구원을 받은 강도는 오른쪽 강도일까요? 왼쪽 강도일까요? 정답은 오른쪽? . 모른다 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눈여겨보지 않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들이 발생합니다. 물론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는 사실은 중요한 문제도 아니죠.

 

그럼 다시 퀴즈하나 내겠습니다. 두 강도중에 누가 예수님을 저주했습니까? 이 문제는 조금 더 성경을 넓게 보신분들만 맞출 수 있는데요. 정답은 둘 다입니다.누가복음에는 한 사람만 저주하고 조롱한 것으로 나오지만 두강도(마태 27:44, 마가 15:32) 모두 처음에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욕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처음에 두 강도는 십자가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당연한 죄가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도 자신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너나 우리나 매 한가지. 도찐 개찐인데 네가 그리스도라고? 지나가던 개도 웃겠다.’ 두 강도는 모두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히 한 강도는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 강렬해지자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서 악을 써가면서 자신의 흉악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네가 그리스도라며? 그러면 너와 우리를 구원해보시지. . 이 말속에는 ‘이젠 틀렸어. 우리는 죄에 상응한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해. 우리에게 기회는 없어’라는 체념이 담겨있습니다.

 

재소자들이 감옥에서 새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면 같은 처지에 있어 누구보다 격려하고 응원해야 할 동료 죄수들이 조롱한다고 합니다.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우린 가망성이 없어. 그런다고 사람들이 너를 이해해줄 것 같아. 한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야.


이것이 바로 죄의 음성입니다. 타인뿐만 아니라 우리자신도 늘 마음으로부터 들려오는 정죄의 소리를 듣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너의 과거를 네 자신이 잘 알잖아. 너 같은 사람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죄의 특징은 사슬처럼 우리의 삶을 묶어버립니다. 옴짝 달싹 못하게 만듭니다. 두 강도는 바로 이러한 죄의 사슬에 묶여 있어서 죄의 음성에 지배를 받았던 것입니다.

 

 

2. 한 사람

그런데 예수님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한 강도는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우리는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지 않느냐?한 강도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향해 저주했던 자신의 죄도 뉘우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여기까지는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체념합니다. 죄인이니까 나에게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심은 있는 죄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강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응받는 것은 당연해.그런데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이 강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체념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나를 기억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회개합니다. 다시 새 출발하기 원합니다. 예수님 나를 도와주세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죄의 사슬을 예수님을 의지해서 끊어버립니다.

 

많은 과거를 가진 사람들도 이 정도는 해보았을 거에요. ‘내 과거를 인정합니다. 나도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살고 싶습니다.그런데 한가지를 몰랐습니다. 죄의 힘입니다. 죄가 가져다주는 정죄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신념이 아닙니다. 사회적 시스템이 아닙니다. 죄는 사탄에게 속한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것으로 결코 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죄책감은 사탄과 죄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만 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한 강도는 간청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예수님. 나는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믿습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영혼을 이 곤고한 죄악의 사슬에서 건져주실 수 있는 구세주 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악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악을 이기신 예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3. 모든 사람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정죄의 감옥으로부터 풀려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소리를 듣고 살고 있습니까?

 

생활속에서도 내 말 한마디 때문에, 내 성격 때문에, 내 행동 때문에, 사람들이 가정이 교회가 상처를 받아요.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한마디면 해결될 텐데. 회복될 텐데...

 

<‘용서해주십시오’하면, 회개하면, 지옥 아니라 천국이 열린다.>

 


ex) 가룟 유다의 배신(마태 26)

23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5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가룟 유다 아직 돌이킬 기회가 있었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의지하십시오. 받아들이십시오.

 


오늘도 새 출발을 원하지만 죄로 인해 죄책감에 빠져 있는 분들,

과거 때문에 주저하는 분들 있다면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두 강도가 아니라 한 강도의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