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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돗 신앙인 Anathoth Christian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8-06-03 (일) 05:28 조회 : 19
설교일 : 6월 3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렘 Jer 11:18-23

아나돗 신앙인 Anathoth Christian

Jer 1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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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았나이다 그 때에 주께서 그들의 행위를 내게 보이셨나이다 19나는 끌려서 도살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20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통함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복을 내가 보리이다 하였더니 21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22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23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 에니라.

 

 

1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 떠난 지 얼마나 되셨나요?

고향은 언제나 포근합니다. 위로와 격려의 땅이지요. 늘 그리운 사람들.

선거철이 되면 지역구 공천 받을 때 ‘우리 동네 사람 찍어야지... 몰표?’ 같은 해프닝은 그래서 발생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그런데 선지자들에게, 예레미야에게, 예수님에게는 고향은 아픔이었습니다.

고향사람들이 핍박했구요. 돌을 던졌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배척을 받는다’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왜 저들은 달랐던 것일까요?

 

 

2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그의 고향은 베냐민 지파 땅이었던 아나돗이었습니다. 1: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자 아나돗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레미야를 핍박했습니다.

 

21절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19절 “나는 끌려서 도살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물론 아나돗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예레미야를 대적한 아나돗 사람들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핍박했을까요?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도 아나돗 사람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나돗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3

그렇다면 아나돗 사람, 아나돗 신앙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진리보다 듣고 싶은 것을 따라가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당시에 선지자는 예레미야만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많은 선지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와는 반대로 평안과 복을 선포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평안과 복을 선포하는 설교자들이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레미야가 아닌 인기 있는 설교자들이길 원합니다.

 

진실된 선지자라면 백성들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를 선포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 선지자들과는 정반대로 회개와 심판을 선포하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심히 불쾌했던 것입니다.

 

예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위여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듣고 싶고 누리고 싶었던 평안과 복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예언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듣기 싫으니까 나중에는 때리고 가둡니다.

 

나는 진리보다 듣고 싶은 것을 따라가는 크리스찬은 아닌지요?

 

 

4

그렇다면 아나돗 신앙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위로뿐만 아니라 책망도 받아들일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이익이 되는 말만 듣는 자기중심주의,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버려야겠습니다.

 

 

5

신혼시절 아내에게 ‘허심탄회하게 말해봐. 내가 문제가 무엇인지. 나 속 좁은 사람 아니거든... 잘 못한 것, 부족한 것...’ ‘... 내가 언제? 그럼 당신은 안 그래?’ 결국 싸움으로 번짐.

참던 아내가 ‘속 좁은 것 맞네...’ ‘뭐야? 속 좁다고...’ 모닥불이 산불로... ㅎㅎㅎ

남자들 한방에 이기는 방법 알려드려요? 속 좁다고 하면 이성을 잃어버려요. 남자들은.

여자들은?

 

 

6

딤후 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우리시대 사람들이 따르는 스승은 진리와 관계없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사욕을 채워주는 인터넷과 지식 홍수에 빠져 살아갑니다.

 

 

7

‘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면 좋은 말만 하라.

그러나 그 사람을 진심으로 깊이 알고자 한다면 책망으로 시험해 보라.

 

 

8

‘아부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진실한 사람을 가까이 두라.

 

 

9

“성공하는 크리스천의 7가지 성격,” 서정웅.

 

당신이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말을 신중하게 들을 줄 아는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남에게 귀를 기울이기 위해 침묵하지 않으면 당신이 성숙해지는 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다짐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도 무엇인가 값있는 말을 할 수 있다고 깨닫는 것이다. 당신이 만나게 되는 사람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라. 그러면 당신은 누구에게든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당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인생의 보화들을 얻게 해줄 것이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처럼 상대방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직 자기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거나 자기 의견만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따라서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지, 혹시 자신이 지나치게 말이 많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다 알고 있다”라는 말은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성숙한 사람은 말하고 듣는 균형을 잘 유지하는 사람이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귀가 둘, 눈이 둘, 입이 하나인 것은 많이 보고 듣되 적게 말하라는 신의 뜻이다.

 

 

10

가정에서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냐 오냐 네가 최고다. 네가 항상 옳다’ 하니까

선생님 조언도 안 듣는 아이들로 성장합니다.

 

조금만 통제해도 분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참지를 못합니다.

 

 

11

안하무인 정치인

안하무인 크리스찬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

‘지 멋대로’

 

 

12

듣고 싶은 것보다 참된 진리의 소리를 들읍시다.

때론 위로보다 책망도 받아들일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