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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약합니다 We're weak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8-06-24 (일) 14:47 조회 : 1418
설교일 : 6월 24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창 Gen 12:10-20

우리는 연약합니다 We're weak

Gen 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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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연약합니다.

얼마전 중국의 유명한 액션배우 이연걸의 최근 모습이 인터넷에 소개되었습니다. 19세에 ‘소림사’라는 영화로 데뷔해 ‘황비홍’이라는 영화로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무술인으로서의 모델이 될 만큼 강인함의 상징 이였던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병과 투병중인 그의 모습은 그가 황비홍의 주연이었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췌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보기에 따라 매우 위대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별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 사실이 때로는 우리를 기쁘게, 그리고 슬프게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떠한 존재라고 여기십니까?

 

2. 우리는 때로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아브람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도착합니다. 우상의 땅을 떠났고 모든 불신앙과 타락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믿음의 사람이죠. 그런데 10절에 보니 그 땅 가나안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가나안의 농업은 발달하지 못하였고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곳이므로 기근이 잦았습니다. 사람들은 기근이 오면 식량이 풍부한 애굽으로 피신하여 거기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최선책이었습니다. 애굽은 나일강이 범람하여 생긴 곡창지대를 가지고 있어서 곡물이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브람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 잘못이라고 해석합니다만 저는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구하러 내려간 것을 가지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배가 고파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모르죠. 어떤 학생은 ‘보리고개가 어디에 있는, 얼마나 높은 고개이길래 보리고개를 넘다가 죽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지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농사는 아직 거두지 못했을 때 보리수확을 기다리는 기간이 하도 길어서 보리고개라고 했고, 그 기간에 무수한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죽었는데 말이죠.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금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유명한 작가 빅토르 유고가 말했다고 합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인생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입니다.

 

아브람이 배가 고파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은 우리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비록 내려갔다고 하더라도 정신은 바짝 차렸어야 했습니다. 아브람은 낯선 타국, 남방의 강대국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크게 불안하였는데 그것은 자기의 아내 사래가 아리따운 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자기 아내의 미모 때문에 애굽인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까 걱정이 되어 사래에게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 하자고 간청합니다.

 

당시 사래의 나이는 65세로 추정됩니다. 그녀가 90세에 출산했고 127세에 죽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중년의 미모를 유지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가 문제입니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는 어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먹을 것 때문에 기가 꺾인 아브람은 아내의 미모가 걱정이 되었고, 그로 인하여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사래는 누이벌이 되어 누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문제는 자기 목숨 위해 사래를 아내가 아니라고 속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걱정했던 일이 사실로 일어났습니다. 애굽왕 바로의 신하들이 사래의 미모를 보고 '심히 아리따움'을 왕께 보고하여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였습니다. 고대사회에서 통치자는 자신의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 여인을 마음만 먹으면 자기의 소유로 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면 이런 경우도 천재지변과 같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만일 아브람이 거짓말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나아갔더라면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피할 길을 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래를 바로에게 빼앗긴 아브람의 비극은 천재가 아니라 인재입니다. 아내는 빼앗겨도 자기 목숨만은 살아야겠다고 하는 비겁하고 천박한 이기주의자의 모습이 들어나고야 말았습니다. 게다가 16절에 보면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함으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하였으니 나쁘게 말하면 아내를 팔아 부자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사 그 재물을 양심의 가책 때문에 받지 않으려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받은 재물은 아브람에게 고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번 목숨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니, 결과는 아내를 팔아먹는 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진리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도 잠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서 비겁하고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

 

3. 우리는 주 뜻 이루며 살기에 부족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얼마나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도 목숨이 아까워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기 목숨 구하기 위하여 아내를 버린 아브람이나, 자기 목숨 살기 위하여 예수님 모른다고 한 베드로나 동일한 인간입니다. 그들은 큰소리치던 사람들이고 누구보다 믿음이 좋다고 인정되던 사람들입니다. 큰 소리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에 늘 부족한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이죠.

 

4. 우리는 주의 긍휼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위대한 선교사인 윌리엄 캐리는 자신의 무덤의 비석에 이렇게 쓰게 했습니다. "윌리엄 캐리 1761년생, 죄 많고 약하고 노력 없는 벌레인 나는 당신의 긍휼하신 거룩한 손에 기대어 잠드나이다. 윌리엄 캐리.”이 사람만큼 충성스럽게 노력한 사람이 없어 보이는데, 그 자신은 평생동안 ‘나는 벌레다’라는 겸손한 생각을 품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가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 모두는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죄 많고, 약하고, 게으르기 짝이 없는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 아닐까요?

 

유명한 성 프랜시스는 역시 평생동안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를 향하여 누군가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대답했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이 땅에서 가장 약하고 비천한 사람을 찾으시다가 나를 발견하신 모양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자랑할 것이 없을 터이니까요."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다만 그것을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목숨이 위태로울 때 비겁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아무도 모르는데 누가 상당한 뇌물을 주면 물리칠 수 있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얼마나 청년 요셉같이 아리따운 여인의 유혹을 물리칠 능력이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주님의 긍휼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5. 우리는 주만 바라봅니다.

아브람은 별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의 비겁함을 벌주지 아니하시고 바로를 벌주어서 그 아내를 구해주셨습니다. 아브람은 그때에 철없이 좋아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를 들어 아브람을 벌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위기 중에서 건지시고 아내를 돌려주셨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벌레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숨을 위하여 내던져버린 아내가 털끝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자기 앞에 있는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비겁한지, 얼마나 실수투성인지, 얼마나 자주 주님 뜻에서 멀어지는지, 그런데비겁한 나에게, 죄 많은 우리들에게 책망대신, 벌 대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애굽의 경험은 은혜의 경험이었습니다. 천재지변 앞에 두려워하고, 바로 왕 앞에 벌벌 떨면서 아내의 미모를 팔아 목숨을 구했던 초라하고 무력한 인간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는 그야말로 감당키 어려운 축복이었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입니다. 모두가 지옥에 들어갈 인간들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오늘 우리에게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교회와 아직도 건강한 육체를 주셨으니 어찌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감격하여 팔삭둥이이고, 지극히 작은 자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인 나같은 죄인 중의 괴수에게 영광스러운 직분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실수와 허물은 없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만, 인간이 어찌 허물이 없고 실수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실수와 허물이 우리를 더욱 겸손하게 하고, 깨닫게 되어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6. 결단의 찬양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우린 우린 연약합니다

 

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합니다

주의 긍휼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우린 주만 바라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

온 세상 위에 넘칩니다

가릴 수 없는 주 영광

온 땅위에 충만합니다

주님만이 길이오니

우린 그길 따라갑니다

그날에 우릴 이루실

주는 완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