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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Christ crucified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8-07-01 (일) 09:17 조회 : 1765
설교일 : 7월 1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고전 1Co 1:22-25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Christ crucified

고전 1Co 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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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Jews demand miraculous signs and Greeks look for wisdom,

but we preach Christ crucified: a stumbling block to Jews and foolishness to Gentiles,

but to those whom God has called, both Jews and Greeks, Christ the power of God and the wisdom of God.

For the foolishness of God is wiser than mans wisdom, and the weakness of God is stronger than mans strength.

 

 

선교의 계절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1. 사람들이 구하는 두 가지

우리 시대 사람들이 붙잡으려고 하는 것은 능력과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이래, 바울시대를 포함해서, 오늘날도 여전히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능력()과 지혜(지식)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믿는 것이 능력과 지혜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능력과 지혜에 대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2. 헬라인의 지혜

바울 사도 당시 헬라는 소위 그리스 문명의 모태를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로 통했고, 고린도는 비즈니스의 중심 항구로 세상의 모든 지혜가 이 항구를 통해 수입되고 있었습니다. 헬라인의 최고 선, 최고 가치는 지혜였습니다. “지혜의 사람이 되라!”고 그들은 자녀를 교육했습니다.

 

<철학> Philos=love, Sopia=wisdom의 합성어로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 사도는 당시의 그리스인, 고린도의 헬라인들에게 그들이 추구하는 지혜가 인간 구원을 가져오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합니다.

 

사실 그들의 위대한 철학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이런 인간 지혜의 한계를 이미 간파하고 <네 자신을 알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교육의 초점도 여전히 무지의 극복, 문맹의 치유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부요 설교자였던 크리소스톰은 “오늘의 지혜자들은 자신의 무지를 알지 못하다는 면에서 정말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바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은 진실입니다. 정보화 시대와 지식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불변의 진실입니다. 정보나 지식의 축적은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지만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존재의 신비와 삶의 목적을 이해하고 있을까요?

 

여기 인간 지혜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전1:21에서 이런 지혜의 한계를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지혜로 1)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2)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수용하고 주님께 나아오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하고 영혼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참된 지혜의 기적입니다.

 

세상의 어떤 철학도 어떤 종교도 해결하지 못한 구원의 기적, 그것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서 우리위해 죽으시고 우리 위해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복음의 기적이었습니다. 세상은 이 십자가의 복음을 어리석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것이 바로 참된 하늘의 지혜로 사는 복음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지혜가 죽는 곳에서 우리는 하늘의 지혜를 경험하고 부활의 삶을 삽니다.

 

 

3. 유대인의 표적

그리스인들이 1세기에 헬라문명을 다음 세대로 전수하고 있었을 때 인류 문명의 또 하나의 축은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승자는 아니었으나, 활발한 상업 활동을 통해 1세기 세계 모든 중요 도시에 유대인들은 이미 막강한 자본의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최고선, 최고 가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손들에게 “능력의 사람이 되라”고, 돈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되라고, 돈만이 그들을 지킬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고대 유대인들, 구약의 유대인들이 하늘의 표적을 구하고 있었다면 1세기 유대인들은 땅의 안전을 지키는 돈의 표적에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십자가는 실패와 연약함의 상징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23)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능력의 상징인 십자가가 그들을 구원하는 역설적인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를 못 박는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이 보고 싶었던 것은 이 기적의 사람 예수가 십자가를 부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실로 열두 영(사단)도 더 되는 영적 군대를 부리시사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는 무력한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분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이 우리의 구원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5에 바울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이 약함의 원리 곧 십자가의 원리를 붙잡고 그리스도인들이 손해보고 핍박받고 고난당하던 시절에는 언제나 복음의 영광이 드러난 때였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가 그랬고, 청교도 시대가 그랬고, 한국 교회 초기 선교 시대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권력을 지배하고 황금을 추구하던 시절 교회는 언제나 타락하고 영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중세기 암흑시대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닙니까?

 

어쩌면 교회가 힘과 자본을 갖기 시작한 때가 가장 암담한 시기가 된 오늘의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교회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영성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던 십자군의 영성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박해 받으며 복음 하나를 붙들고 흩어져 가던 십자가의 영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가 우리가 강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12:9에서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내가 나의 약함을 자랑하겠다”고 고백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약함을 알고 주를 의지하고 무릎꿇는 그 자리가 바로 우리가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전에 집중훈련 강사로 오셨던 아리조나 호피 인디안을 선교하던 이상혁 선교사의 이야기를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보스톤 단기선교팀과 당당하게 이 무식한 인디안들을 선교하겠다고 축호전도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후, 십자가아래 겸손하게 무릎꿇어 인디안들을 무시하던 자신들의 교만을 회개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고백하던 그 자리에 임했던 부흥, 그 십자가의 부흥이 필요한 때가 아닙니까?

 

우리 자신이 아닌, 우리가 소유한 황금이 아닌, 우리가 추구하는 권력도 아닌, 오직 십자가에 자신을 드리신 주님만을 의지하는 그 자리, 거기에서 우리는 진정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4.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Only Jesus

고전 1:18-21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오늘 여러분은 이 자리에 무엇을 보기 위해, 무엇을 얻기 위해 나오셨습니까?

능력입니까? 지혜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오직 예수님이 능력이요, 지혜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분을 믿고, 그 분을 전하는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