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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시리즈3 아버지입니까? Are you a father?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8-12-02 (일) 16:47 조회 : 49
설교일 : 12월 2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눅 Lk 15:11-32

WHO 시리즈

3. 아버지입니까? Are you a father?

Lk 15: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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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시리즈 세 번째 시간입니다.

 

아버지하면 한국분들은 탤런트 최불암씨를 많이 떠올린다고 합니다.

전원일기의 양촌리 김회장님, 허허허 웃음소리, 아내로 나온 김혜자씨와의 부부금실 ...

언제나 포근한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죠.

그래서 그런지 최불암 시리즈가 한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발냄새가 무척 심한 최불암과 입냄새가 엄청나는 김혜자가 자신들의 비밀을 감춘 채 결혼을 했답니다. 결혼식을 올린 후 신혼여행 첫날, 최불암이 호텔에서 샤워를 하기 위해 양말을 벗었는데 그만 지독한 냄새가 방안에 가득했습니다. 이에 김혜자가 당황해서, "아니 이게 무슨 냄새예요?" 하고 따지며 말하는 그녀의 입에서 악취가 풍기는 걸 알고는, 기가막힌 최불암 왈.....

". . 임자가 내 양말 먹었어?"

 

오늘은 아버지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돈보다 아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떤 요구를 했습니까? 12절 보시면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둘째 아들에게 돌아갈 분깃은 상속 재산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의 상속법에 의하면 장자에게는 두 몫을 주고, 차자에게는 한 몫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21:17). 둘째 아들은 이 법을 근거로 자기의 몫을 미리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상속이란 아버지가 임종이 가까웠을 때 자발적으로 자식들에게 나눠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 계시는데 자기에게 상속될 재산을 나누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불효막심한 요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버지라면 이런 아들의 요구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 아버지는 어떠했습니까?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12b) 두 아들에게 상속법대로 미리 살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살림을 나누어주어도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재산을 임의대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동의를 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13a에 보면 며칠이 못 되어 둘째 아들은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버렸습니다. 재물을 다 현찰로 바꾸어 가지고 아버지 간섭이 없는 먼 나라로 떠나 버렸습니다.

 

여러분, 이 아버지가 왜 아들에게 큰 재산을 나누어 주었을까요? 아버지의 권위로 아들을 책망하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재산을 못 나누어 준다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살림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살림을 나누어 주면 살림을 팔아서 집을 나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버지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만일 아들이 계속 상속을 물려달라고 요구하는데 아버지가 거절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까요?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그 많은 재산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아버지는 아들의 청을 들어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돈보다 아들이 더 귀중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움켜쥐고 아들과 원수되는 것보다는 돈을 다 잃더라도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성을 더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재물은 다 잃더라도 아들과의 관계성은 잃지 않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요즘 돈 때문에 자식과의 인연을 끊는 부모도 있습니다. 돈 때문에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도 있습니다.

 

돈보다 사람이 더 귀합니다. 세상살다 보면 우리는 너무 세상적으로 변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사람보다 돈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사람나고 돈낫지, 돈나고 사람낫나?’ 돈이 아무리 소중해도 사람보다 소중할 수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교회는 사람 살리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그런데 가끔식 우리는 탕자의 형과 같을 때가 많아요. ‘아버지 저 창기와 놀아나면서 세상유혹에 그 귀한 아버지의 유산을 다 탕진한 저 놈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다니요?

 

2. 아버지의 믿음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만약에 아들이 집을 나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인생이 끝나버릴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라리 아들을 야단쳐서라도 옆에 붙잡아 두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이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떠나 망할 줄을 미리 예측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수 있냐고요? 집 나간 아들이 다시 돌아 올 것을 알고 미리 기다리고 있었음이 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애시당초 아들에게 재산을 주면 안되죠. 그럼에도 이 아버지는 아들에게 재산을 줍니다. 이 아버지는 왜 그렇게 무모한 일을 했을까요?

 

아버지는 아들을 믿었습니다. ‘지금은 철이 없어 저러지만 고생 좀 하다보면 내 아들은 다시 정신을 차릴 거야.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거야.’ 결국 아들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나간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끝없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평생 벌어 놓은 재산을 다 탕진해 버렸으니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그런 자기를 받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끝없는 믿음이 있었기에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얻게 됩니다. 자식을 향한 믿음을 가질 때 문제 많은 자식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조급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다릴 줄 모릅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평가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모나고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답답해서 견딜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되어 금방 한마디 해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변한다고 말이죠. 그래서 사람에 대해서도 기다릴 줄 모릅니다. 기다릴 줄 모르는 것은 그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좀 기다려 주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대로 그 사람이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동서울에 살았습니다. 그 때 가끔씩 올라갔던 산은 워커힐이 있는 아차산입니다. 처음에 이름도 참 시한하다 생각했습니다. 아차 하면 굴러서 한강에 빠질 수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아차산은 고구려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이라고도 합니다. 전래동화에 보면 평강공주는 바보소리를 들었던 온달을 맞아 결혼을 합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평강공주는 남편을 믿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바보온달은 고구려 장수가 됩니다. 북주의 무제가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나서서 큰 공을 세웁니다. 영양왕 때는 신라군 토벌을 위해 아단성, 즉 아차산까지 내려와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훌륭한 장수가 됩니다. 바보 같았던 온달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었습니까? 평강공주의 끝없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3. 아버지의 품어줌

본문의 아버지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완전히 망해서 거지가 되어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아들, 어떻게 보면 좀 그에 상응한 댓가를 받게 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무조건적 용서를 합니다.

 

아들은 죄를 자백하고 벌을 받고, 날품팔이로라도 살게 해 달라고 애원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의 말도 듣기도 전에 이미 아들을 다 용서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영접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용서는 아들이 와서 죄를 고백했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돌아온 그 자체가 고맙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필요 없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아들 그 자체를 영접해 주는 것이 용서입니다. 재산을 어떻게 낭비했냐, 창기와 함께 놀아났냐? 그런 것 따지고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용서는 그 고백 이전에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온 그 자체로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혔다고 하는 것은 아들의 죄를 탕감해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가 있음을 공포하는 행위였습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웠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표시입니다. 또 신을 신겼습니다. 당시 종들은 동시에 종들은 맨발로 다녔습니다. 아들만이 신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 옷, 가락지, 신는 필요성 때문에 제공된 것이라기보다는 아들을 존귀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조건 없이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를 다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들로서 모든 특권을 다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맏아들이 들에서 돌아왔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큰 아들을 잘 타일렀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주목하기 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버지의 품어줌입니다. 용서의 다른 이름은 품어줌입니다. 품으면 차디찬 얼음도 녹습니다. 품으면 계란이 병아리가 되듯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도 전>

오늘 본문의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가치없는 나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끝까지 믿어주시며 오래 기다려 주셨습니다.

문제 많은 나를 정죄하지 않고 용서해 주시며 큰 가슴으로 품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속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요?

아버지의 모습으로 살겠습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겠습니다.

아버지의 믿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아버지의 품으심으로 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