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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마지막 고백 The last confession of the year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8-12-16 (일) 14:21 조회 : 1227
설교일 : 12월 16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롬 Ro 8:28-30

한해의 마지막 고백 The last confession of the year

Ro 8: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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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12월의 끝에서> 정유찬

 

사랑한 날이 미워하는 날보다 많았는지

슬프고 힘들었던 날보다 행복했던 날이 많았는지

12월의 끝에서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고 있어

보석 같은 날들을 가슴으로 살았니 머리로 살았니

얼마나 웃고 살았어 아니면 찡그렸어

맑은 하늘아래 투명한 날들을 뿌연 눈으로 보낸건 아닐까

별이 찬란하던 밤 내가 깨어 있었는지 잠들어 있었는지

난 거울을 봐 거울속의 나를 봐

아름다워 진거야 추해진 거야 무엇이 변한 것일까

밤이 깊어만 가네 한해가 또 저무네

 

12월 한해의 마지막을 지나며 어떤 감회가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아쉬움입니까? 만족스러움입니까? 후회입니까? 기쁨입니까? 섭섭함입니까? 감격스러움입니까?

 

무엇보다도 감사함이 여러분의 마음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감사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고와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무사히 여기까지 온 것 감사합니다.

무서운 질병이 난무하는 가운데에도 건강하게 살아온 것 감사합니다.

많은 기도가 응답된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금년에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셨음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셔서 풍성한 사랑을 받고 살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좋은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시고 누리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믿음이 더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많이 맺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는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 위기에 처한 사람도 있습니다.

고난의 긴 터널을 지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분들도 감사해야 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지나온 한 해 동안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았고 환영할 수 없었던 질병과 사고, 실패와 가난을 만나 시달리고 그로인한 상처와 고통이 있었는데도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니 감사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한해의 마지막 고백을 감사로 마칠 수 있는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1.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기 때문입니다(28).

 

하나님 나라에는 쓰레기통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이죠. 쓰레기 같아서 정말 버리고 싶은 일들도 나중에 보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오늘의 구원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고난 까지도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까닭은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모르시는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연한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필연이며 그 속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모든 하나님의 뜻은 다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선한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지식과 생각으로는 현재 그것을 다 헤아릴 수 없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을 꼭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승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힘든 일이 없어서 잘 사는게 아닙니다. 힘든 일이 있어서 못 사는 것도 아닙니다. 힘들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못 사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힘들지 않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기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극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요셉이야 말로 얼마나 나쁜 일들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었습니까? 형제들의 질투와 핍박, 사막의 웅덩이인 사지에 던져진 죽음과의 대면, 원치 않는 노예생활, 억울한 감옥살이, 은혜를 잊어버린 관원 등 불행하게 보이는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요셉의 입술에서 불평이나 원망의 언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그 비밀을 그가 자기를 사지로 내몰고 죽음을 시도한 형제들을 만나서 그가 고백한 간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45:5을 보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다시 7-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어떻게 이 험한 세월을 이기고 요셉이 이런 간증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섭리를 일찍부터 믿어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 개입하셔서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며 한해를 마무리하시고 2019년도 새 출발 하시길 바랍니다.

 

 

2.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9).


사실 성도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있다고 해서 당장에 악한 일이 선한 일로, 악한 상황이 선한 상황으로, 실패의 환경이 성공의 환경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동안 우리의 상황은 나쁘고 악하고 힘든 상황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얼마동안 우리를 나쁜 상황 한 복판에 그대로 두신채로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를 둘러싼 고난은 우리의 인격을 연단하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다듬어 빚으시는 인격의 모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인 것입니다.

 

8:29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바로 이 목적을 마음에 두시고 때로 사람들과의 갈등을 사용하여 나를 다듬으십니다. 때로 인내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시련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뜻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환경과 사람을 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고난을 주시고 당시에는 괴롭고 힘들어도 인내하며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까지 성숙하고 거룩해지는 기회로 삼으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이 피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들의 형상을 본받을 수도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통과하며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성화의 자리에 이르면 어떻게 하십니까? 30절을 보십시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당신의 사랑받는 자녀로 정하시고 때가 찬 어느 날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의롭다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인치셨다가 우리를 인생의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인격적으로 연단하사 마침내 영화로운 존재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영화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려고 지금 다듬으십니다. 여러분 영화롭게 변화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범죄 심리학자인 소퍼 박사는 형무소에 있는 죄수와 수도원에 사는 수도사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불평과 요구만을 말한다. 그러나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는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렇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 만일 감사의 기도 대신 요구와 불만의 기도만을 드린다면, 형무소의 죄수와 별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윌리엄 리바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그는 무려 네 번이나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리바인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조끼를 입고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주변의 상인들이 물었습니다. "우리도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조끼를 입어야겠는데 어디서 그것을 구할 수 있나?" 리바인은 방탄조끼를 주문받기 시작했습니다. 주문이 점점 늘어나서 손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육점을 정리하고 '방탄조끼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는 크게 성장해서 세계 40개 도시에 지사를 세우고 일약 국제적인 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리바인은 회장으로 취임하며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습니다. "강도를 네 번 만난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강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칼을 들고 고기를 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된 가나안은 사실 아주 황폐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가나안을 옥토로 표현했을까요? 거기에는 무서운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은 어떤 곳이든지 최상의 것으로 여긴다는 고백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이 이스라엘을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으니, 토지소산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청지기 신앙이 저들을 부요하고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물질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흘러듭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가정에 불행이 침범하지 못합니다. 감사가 곧 자산입니다.

 

 

그래서 감사야 말로 신앙인들이 고백해야 할 믿음의 정수인 것입니다.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한해를 돌아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교차할 것입니다.


나의 한해의 마지막 고백, 그것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