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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코로나4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20-04-05 (일) 05:51 조회 : 1917
설교일 : 4월 5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호 Hos 6:1-7

비욘코로나4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Let us return to the Lord

Hos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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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살이 확찐자>

- 확찐자 이동경로 공개합니다 : 식탁-쇼파-냉장고-쇼파-식탁-침대-냉장고-침대

- 살이 ‘확찐자’가 아니라, 믿음에 ‘확신자’로 삽시다!

 

 

오늘 우리는 고난주간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그 어느 해보다 고난의 의미가 더욱 뼈저리게 느껴지는 수난주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고난주간을 통하여 우리는 믿음과 삶을 되돌아보는 깊은 성찰을 통하여;

 

1.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중에 한사람입니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와 같이 남유다가4명의 왕이 바뀌는 동안,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가 장기집권(41)을 하고 있었을 때에 그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여로보암 2세 때에 나라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었고,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가장 부강하고 찬란한 ‘르네상스’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안정과 부요함이 있다고 해서 사회가 건강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북이스라엘은 영적으로는 타락해 있었으며, 사회적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여지는 한 동상에는 이러한 글귀가 새겨져 있을 정도입니다. “사마리아의 여호와와 그의 아내 아세라가 너를 축복하기를 원한다.

 

그때에 호세아는 그들을 향하여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돌아간다’는 말의 원어 ‘베나슈바’‘슈브’라는 단어는 ‘회개’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죄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고,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목회할 때 교통체증이 심하니까 지하철을 이용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새벽예배 마치고 바쁘게 사역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으면 졸음이 몰려와서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전혀 당황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음 역에서 내려서 반대편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다시 돌아가면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당황하지 말고 반대쪽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철’을 타고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지, 잘못 가고 있는지를 모를 때입니다. 안내방송에서 들려오는 정거장 안내 목소리를 듣지 못할 때, 우리는 더 가기고 하고, 엉뚱한 곳에서 내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잘 가고 있는지 잘못 가고 있는지 매일 매일 말씀을 통해서 점검해야 합니다.

 

이사야 55:3,6,7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회개할 때 소망이 있습니다.

‘회개 없는 구원 없듯이, 회개 없는 신앙의 성장이 없으며, 회개 없는 삶의 변화란 없습니다.

따라서 ‘회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전염병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떠나 살았을 때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는 도구로 질병을 사용하셨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시대는 마치 여로보암 2세의 때처럼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란한 호세아의 아내 고멜과 같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는 타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아빠 코로나는 왜 생겼어요? 글쎄. 바이러스니까 질병 때문이지. 아빠 아세요? ? 코로나에 걸리는 사람보다 더 많이 사람들을 죽이는 게 있어요? 그게 뭔데? abortion요’ 하면서 abortion clock를 보여주는데,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According to WHO, every year in the world there are an estimated 40-50 million abortions. This corresponds to approximately 125,000 abortions per day. 이 숫자는 동물들이 죽는 숫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생명들의 숫자입니다. 정치인들이 뻑하면 인권 인권하며 떠들고 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홀로코스트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매년마다 재현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가지 중에 단지 하나 일뿐입니다.

 

5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코로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안 믿는 사람들조차도 ‘영적인 그 무엇이 작용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합니다. ‘코로나가 무언인가를 말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과연 코로나가 살아서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코로나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줄 믿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니 돌아가야 삽니다.

 

고난주간을 통하여 우리는 믿음과 삶을 되돌아보는 깊은 성찰을 통하여;

 

 

2.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제사를 드릴 때 저들도 속죄제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나요?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회개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무엇을 잘 못했는지 그 회개해야 할 죄의 문제를 알 때 진정한 회개가 됩니다.

무조건 잘 못했다고 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아내의 속상한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 남편이 ‘여보 내가 무조건 잘 못했어요. 다 잘 못했어요.’ ‘뭘 잘 못했는데.’ ‘아니 뭐든지 다 내 잘못이야.’ 절대로 여자의 화가 풀리지 않습니다. 왜그럴까요?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왜 잘 못했는지, 무엇을 잘 못 했는지, 정확히 말을 할 때 비로서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자신들은 그냥 제사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우리가 돌아갈 때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치유하시고, 살리시는 분입니다.

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둘째, 우리가 돌아갈 때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인애란 ‘헤쉐드’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런데 에브라임=북이스라엘=우리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금방 없어져버리는 구름이나 이슬 같은 사랑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십니다. 진실한 사랑, 성실한 사랑, 변함없는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그 말은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하다는 반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당신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받아주시고 품어주십니다. 어떨 때는 그렇고 어떨 때는 그렇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내 백성이 나를 떠나 돌아섰지만

내 사랑이 내 백성을 포기못하니

내 모든 것 내어주고

나 그들을 얻으리라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린 돌아서도 그는 변치않네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린 넘어져도 그 사랑 영원하네 (by 조수아 찬양중에서)

 

누가 15장에 보면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떠나 곤궁하게 되니까 비로서 알았습니다. 불효자인 자신에게 재산을 떼어준 것도, 그리고 돌아가면 자신을 받아줄 것이란 사실도.... 돌아가 체면없어 품꾼의 하나로 대우해 달라고 했더니, 자신이 기대하고 있던 아버지 보다 더 크고 넓은 사랑의 아버지를 그는 만나게 됩니다.

 

코로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저주요.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아니요. 어쩌면 코로나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 일 수 있습니다.

‘회개는 복을 부르고 불평은 화를 부릅니다.

‘회개는 감사와 비례합니다. 감사가 복이 되는 것처럼, 회개도 복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회복을 부릅니다.

 

 

호세아서를 가만히 묵상해 보면,

‘호세아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소원을 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맥킨토쉬는‘이 기도문은 하나님께서 백성들로부터 듣고자 하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는 고난주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기도는 무엇일까요?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