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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코로나5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20-04-12 (일) 08:44 조회 : 1036
설교일 : 4월 12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고후 2Co 13:4

비욘코로나5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God reigns

고후 2Co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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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 코로나 블루? 코로나로 우울하시죠? >

- 울 아내, ‘아니 왠 비상식량을 배추로?'코로나, 김치로 이겨보자.' 김치백신!

- 웃음이 백신이다. 존 맥스웰 ‘웃음은 인생이라는 토스트에 바른 Jam이다.

- 오늘은 기쁜 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예수님 다시 사셨습니다. 하하하!

 

 

1. 아더 애쉬라는 분은 6-70년대에 활약한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입니다.

모든 테니스 선수들의 꿈인 그랜드 슬램에서 세 번, 윔블던에서 한번 우승을 했죠. 그렇게 잘 나가던 그가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게 되고, 수술 중 피를 잘못 받아 AIDS에 걸립니다. 그가 AIDS에 걸린 것이 알려졌을 때, 세계 팬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았는데, 그 중 하나의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을 그 같이 나쁜 병에 걸리게 했을까요? 왜 하필이면 당신입니까? 아더 애쉬가 AIDS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다음에 누군가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전 세계 5천만 명의 어린이들이 테니스를 치지만, 그 중 5백만 명이 테니스를 정식으로 배우게 되죠. 그 중 50만 명이 직업 선수가 되고, 그 중 5만 명이 리그전에 참여합니다. 그 중 5천명이 그랜드 슬램 대회에 참여할 자격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중 50명만이 윔블던에 참여할 자격을 얻습니다. 그 중 4명이 준결승에 진출하고, 그 중 두 명만이 결승전에 갑니다. 제가 윔블던 우승컵을 들었을 때, 저는 ‘왜 접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어느 기자가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더 애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일 제가 심장마비 혹은 AIDS에 걸린 것을 두고 ‘왜 접니까?’라고 묻는다면, 제가 받은 축복에 대해서도 ‘왜 접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1975년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을 한 다음 날, 저는 제가 받은 축복에 대해 ‘왜 접니까?’라고 물었어야 합니다. 만일 저의 승리에 대해 ‘왜 접니까?’라고 묻지 않았다면, 저의 실패와 재앙에 대해서도 ‘왜 접니까?’라고 묻지 말아야 합니다.

 

욥과 같이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1:21)’ 고백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에게 있었던 그 믿음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자신이 억울하게 AIDS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고, 또한 자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이분의 확신을 그 어떤 것도 결코 흔들지 못했습니다.

 

146: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참된 믿음은 현실을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온갖 일들을 진리에 입각하여 해석하는 사람이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무엇이 진리입니까? 무엇이 사실입니까? 꼭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믿음이 결국 승리합니다.

 

 

2.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생생하게 드러난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죄 없는 예수님이 군중의 선동에 의해서 극악무도한 죄인이 되었고,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순순히 받아들인 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끝났다면,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 없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입증해보이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시켜주심으로 역사의 주관자 되심과 세상의 창조주 되심과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입증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우주적 승리와 통치, 그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을 때 하나님께서 부활의 권능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예수를 죽음 가운데 살리셨던 것처럼,

온 인류를 당신의 사랑으로 구속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통치하신다.

 

벧전 1:20-21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3. 그런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몇 가지 방식, 혹은 종류가 있습니다.

코로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습니다.

 

첫째, 코로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일 수 있습니다(심판으로서의 질병). 하나님은 그분을 거절하고 스스로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심판을 내리기 위해 때로 질병을 사용하십니다.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하나님은 때로 심판을 내리기 위해 질병을 사용하실 수 있고, 지금도 사용하고 계십니다.

 

둘째, 타락한 세상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일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타락한 결과). 아담과 하와를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인 우리의 몸을 포함하여 창조된 만물들이 타락과 허무를 경험할 것이며,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이 죽을 것이라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크리스천들도 이러한 육체적 타락과 허무와 사망을 피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8:20-23의 요점입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셋째,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은혜로서의 질병). 하나님은 때로 그분의 백성들을 정화시키고, 바로잡기 위해서 질병을 주기도 하십니다. 그것은 정죄가 아니라 구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은혜 행위입니다.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넷째, 그러나 특정 판데믹이 발생하는 정확한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다는 견해입니다(일반계시의 법칙).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연 속에 정하여 두신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즉 자연의 원리에 의해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판데믹은 이번에만 발생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병들이 타락한 결과 때문인지, 하나님의 심판인지, 은혜의 방편인지, 일반계시의 법칙 때문인지 우리는 정확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 우리가 다 알 수 없고, 그분의 생각을 우리가 다 셀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계획을 신실하게 이루어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서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줄 믿습니다.

 

 

4. 그러므로 ‘선한 능력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나는 믿는다.

오늘 우리 목회자들이 특송했던, 이곡은 1945년 새해를 앞두고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 훼퍼가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약혼녀인 마리아 베데마이어에게 쓴 마지막 옥중서신속의 시, Von guten Machten, 선한 능력으로’입니다. 그는 4개월 후 히틀러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2차대전 종전을 한달 앞두고 1945 49 39세의 나이에 교수형을 당합니다. 이 시에 1970년 지그프리드 피즈목사가 곡을 붙였고 이 찬송은 독일 찬송가에 실리게 되죠. 그는 조국이 독일 나치정권에 휘말려 흑암의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저항했던 신학자였고, 석방이란 희망의 촛불이 점점 꺼져가고 있던 상황에서도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하심에 대한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하어 교회가 문을 닫고 예배도 드릴 수 없는 암울한 부활절은 나에게, 우리에게, 교회에, 조국에, 온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주님이 다스리십니다.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그 앞에 무릎 꿇고, 그 분을 경배하십시오.

나는 믿습니다.

선한 능력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 도전과 결단 >

천로역정을 보면 순례자가 여행을 하는 중에 굉장히 지쳐있었습니다. 그런데 와보니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안에 있는 정원사가 순례자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합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사자가 입구에 있었습니다. 사자가 있는 것을 보고 순례자는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정원사는 사자가 사슬에 묶여 있으니 들어오라고 하지만 무서워서 못 들어갑니다. 정원사가 아무 걱정을 하지 말고 들어오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순례자가 용기를 내어 들어가는데 사자가 잠에서 깨어서 으러렁 거리며 달려들려고 합니다. 그러자 순례자는 사자 때문에 멈추고 맙니다. 결국 집안으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불신과 겁쟁이라는 사자 앞에서 우리는 용기를 내어 하나님을 믿고 전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상황이 어렵고 사탄의 역사도 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보다 역사가 후퇴하는 것 같고 약속의 말씀, 소망의 말씀보다 현실적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게 옳은 것 같을 때라도 우리가 굳게 붙들어야 할 진리는 우리의 하나님이 선한 능력으로 통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믿음 안에서 우리는 참된 평화와 구원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로 세상이 흔들리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굳게 붙들어야 할 진리가 있다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온다 해도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굳게 붙들고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