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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의 축제를 꿈꾼다 Hold a feast of Purim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20-06-07 (일) 10:23 조회 : 1435
설교일 : 6월 7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에 Est 9:21-32

부림의 축제를 꿈꾼다  Hold a feast of Purim

Est 9: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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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설교는 단순히 성경지식, 해석과 같은 교리적 이해를 넘어, ‘우리 삶의 자리’를 해석하고 방향을 제시하거나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자리는 어떻습니까?

개인적인 것도 있고, 사소한 일상에 대한 것도 있겠지만,

전 세계적인 큰 그림으로 보았을 때 저는 두 가지가 가장 뜨거운 화두가 아닐까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차별’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 부재는 코로나로 인한 ‘하나님은 무얼 하고 계신가?’ 대한 하나님에 대한 문제라면,

차별은 미국사태로 다시 촉발된 ‘인간은 왜 서로를 차별하는가?’ 대한 인간문제입니다.

 

시간과 상황이 한 번에 다 나눌 수 없는 중요한 문제들이기에,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부재와 차별에 대해서 번갈아가며 시리즈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하나님의 부재와 인간의 차별에 대한 ‘두 가지 주제가 함께 만나는 성경’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에스더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한 서론설교’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성경 에스더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1. 에스더는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답변입니다.

에스더시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 바사시대(페르시아) 아하수에르왕이 다스리던 수산궁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의 고레스왕은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나라를 재건하라고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바사제국으로부터 독립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나라가 폭망하고 여전히 이방민족의 지배아래 있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한 가지 떨쳐버릴 수 없었던 일종의 의구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왜 하나님은 우리를 이방민족에 망하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선택한 우리를 버리셨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 압제의 고통에서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시지 않고 계신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절대권력의 총리자리에 있던 하만의 상소로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비롯한 유대인들을 왕의 법을 따르지 않는 반대세력으로 몰아 왕께 청원하여 127개도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을 학살하려는 음모를 성사시키게 됩니다. 죽느냐? 사느냐? 절대절명 위기의 시대, 왕후였던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권고를 받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한 후 왕 앞에 나아가 하만의 음모를 간언합니다.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하나님 부재시대,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아하수에로로 하여금 오히려 하만을 장대에 매달아 처형시키고, 하만의 자리를 모르드개가 대신하도록 역전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9:24-28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그들을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의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의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따라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으로 말미암아, 뜻을 정하고 자기들과 자손과 자기들과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하고 정해 놓은 때 이 두 날을 이어서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에스더라는 이름은 페르시아 이름이지만(히브리 이름 하닷사) 그 글자를 히브리어로 읽으면, 에스테르에서 세테르(סתר)는 동사의 1인칭 미래형, 히브리어로는 ‘숨다, 숨기다’라는 뜻입니다.하나님이 그 얼굴을 숨기시는 것 같은 상황,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의 부재로 느껴지는 그런 상황,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고 그 결과가 바로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통한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부재시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여전히 돌보신다는 답변이 바로 에스더서요, 부림절의 유래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십니까?( 4:38)’ 광풍으로 원망하던 배에 탔던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며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이 코로나시대 오늘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또한 에스더는 차별에 대한 답변입니다.

하만은 왜 모르드개를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려했을까요? 에스더 3장에 보면 모르드개는 ‘자신은 유다인이기 때문에 하만에게 무릎 꿇어 절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하만은 화가 나서 모든 유다인들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학자들은 하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혀 진멸당한 아멜렉족속, 아각의 후손이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홀로코스트 비극입니다. 인종말살 정책.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청소를 단행합니다. 역사속에서 수많은 박해의 원인은 차별과 증오심이었습니다.

 

차별은 인간의 타락한 죄성에서 나온 죄악입니다. 남녀의 차별, 신분의 차별,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별, 인종 차별, 출신 지역에 따른 차별, 학력에 따른 차별 등 온갖 차별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고 그 차별이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병들게 합니다. 하만의 인종차별, 인종청소. 하나님은 그 차별을 거부하고 깨뜨리셨습니다.

 

본문 9:22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하매.

 

부림절 축제는 아달월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즐겁게 잔치를 베풀어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는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서로 선물을 주며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라는 명령에 따른 전통이 바로 미쉴로악 마놋(משלוח מנות)입니다. ‘먹을 것을 보낸다’라는 뜻인데, 그래서 오늘날도 부림절이 되면 먹을 것들을 담은 선물바구니를 이웃과 친구들, 특별히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풍습을 지킵니다. 부림절속에 차별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차별을 깨뜨리신 분이십니다. 유대인들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렇게 멸시했던 사마리아인들에게 다가 가셨고,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차별 당하는 여자들의 인권을 존중하셨고, 죄인이라고 차별받고, 가난하다고 차별 받았던 이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 도전과 결단 >

유대인의 명절들 중에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즐기는 축제는 부림절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14일과 15일 두 날을 지킵니다.

어쩌면 두 가지를 잊지 말라는 하나님의 섭리는 아닐까요?

하나님은 부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