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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2 환대 공동체 Hospitality Community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20-06-21 (일) 06:39 조회 : 1163
설교일 : 6월 21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눅 Lk 15:1-10

환대시리즈 Hospitality 2

환대 공동체 Hospitality Community

Lk 1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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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안디옥교회 창립 21주년 기념주일 : 우리는 어떤 교회가 되길 더욱 힘써야 할까요?

 

 

1. 환대하시는 예수님

본문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다. ‘가까이 나왔다는 것’은 저들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부자들은 호주머니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에 하나님을 모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

 

그런데 본문 2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수근 거리며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수근거렸다’는 표현은 ‘불평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들과 절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가까이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말은 관계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 기꺼이 받아들이고, ‘음식을 먹었다, 가까이 하며, 함께 어울렸습니다.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환영했습니다. 환대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도 비슷한게 있죠? 아내 혹은 가족을 ‘우리집 식구’라고 말합니다. ‘밥 같이 먹는 사람’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남녀가 밥 같이 먹으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죠? ㅎㅎㅎ. (오늘은 Father's Day네요!)

 

‘가까이 나온 죄인들을 영접하신 예수님, 죄인들과 예수님 사이의 거리는 얼마였을까요? 사람과의 관계적 거리는 두 가지, 심리적거리물리적거리가 있습니다. 멀다와 가깝다로 따져보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까웠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둘 다 멀었습니다. 그런데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는 상호적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하고는 가까이하지 않죠. 섞이고 싶지 않은 것, 끊어진 관계를 말합니다.


‘부부가 사랑하면 칼날 같은 침대에서도 함께 잘 수 있지만, 미워하면 10m 넒은 침대도 좁은 법’입니다. (적과의 동침? ㅎㅎㅎ)

 

그래서 사회속에서 세리와 죄인들은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외롭고, 괴로웠습니다. 그런 그들을 따듯하게 환영하신 예수님이 오늘 문제 많은 나와 같은 사람도 여전히 환대하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2. 환대하는 공동체

그러면서 3-10절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소유물을 잃어버렸을 때 너희가 하는 것처럼, 100/1, 10/1에 해당하는 세리와 죄인들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똑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기준으로 볼때, 숫자적 의미로 볼때 1%에 해당하는, 그래서 필요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저들도 우리가 되찾아야 할, ‘잃어버린 존재’ 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시죠? 첫째는 ‘기꺼이 찾아나서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더 나아가 ‘함께 잔치를 베풀고 즐기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라는 특정 계층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너희, 우리’라는 ‘유대인 공동체, 사회적 집단’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이 말은 ‘교회공동체, 사회적 집단’이라고 해석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환대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대하는 공동체는 1%의 비전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안디옥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환대공동체’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 예수님 중심 공동체

Christ-centered community is where you move from selfishness to love, genuine care, and willingness to sacrifice for others. (Jeremy Favreau)

 

환대하시는 예수님처럼 환대하는 공동체가 바로 예수님 중심 공동체입니다.

 

목사의 가장 큰 두려움이 있다면 “요즈음 헌금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혹은 “그 교회는 너무 작아”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로서 듣고 싶지 않은 것은, 길거리에서 어떤 분이 “목사님, 지난주에 교회에 방문했는데 누구도 나를 반겨주지 않았습니다!하는 소리입니다.

 

환대, 영접, 받아들임, 돌봄, 기꺼이 손을 내 밈… 우리 교회 공동체는 이런 환대와 환영과 영접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각 사람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를 환대하여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영접해야할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뻗어 닿아야 할 범위, 우리가 찾아 나서야할 범위, 우리가 포옹하고 얼싸안아야할 범위는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닿고 찾고 얼싸안았던 만큼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이 말에 담긴 이중적 의미는, 우리가 예수님의 팔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팔로서 다른 사람을 거룩하게 포옹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포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회퍼 식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4. 환대의 공간 만들기

약육강식의 시대, 각박함 속에서 우리는 어떠하든지 ‘환대의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선관 시인의 ‘없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번개시장에는 번개가 없고,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국화빵에는 국화가 없고, 정치판에는 정치가 없네.

 

교회에는 뭐가 없습니까? 신앙인들에게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있어야 할 것이 없는데도 교회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가짜 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라면 예수님의 정신이 있어야 하고, 예수님의 거룩한 영이 있어서, 그 정신과 거룩함으로 '독 가득 품고 상관하지 말라고 고함치는 이들'을 품어내는 사랑과 환대가 있어야 합니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천국가면 3번 놀란데요. ‘꼭 올것 같던 사람이 없어서, 못 올것 같은 사람이 있어서, 내가 와서. 나같은 사람도 환대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캐나다는요?

Melting PotSalad Bowl 모두 다양한 민족이 살아가는 사회를 나타내는 개념이지만, 그 차이는 주류 문화에 동화될 것인가? 또는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고 다양성을 추구할 것인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정체성은 미국과 달리 Salad Bowl, 그래서 모자이크를 이루는 모두가 환대받는 나라를 만들자는 이념을 가진 국가입니다. 그런데 Covid19 이후에 Anti-Asian Racism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의 흑인이 캐나다에서의 아시아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디옥 교회는요?

신규 이민자들(고향 떠나온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나그네로 있었음을 기억합시다!

 

유학생들에게 밥 한끼로 시작된 안디옥전통을 이어가자!

‘어떻게 우리교회를 알고 왔느냐? 청년들을 환영하는 교회래요.

이 전통을 넘어서 이제는 ‘누구나 환영하는 교회래요.

 

건물 공유 또는 개방하기.

건물을 이전 혹은 확장해야 한다면, 저는 그 이유와 소망은 ‘소수민족 교회들과 함께 하는 교회,All Nations Church가 되는 것입니다.

 


5. 헌신과 결단

15:7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ESV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Welcome one another, as Christ has welcomed you.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환영하셨듯이 서로를 환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