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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부재2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20-07-05 (일) 07:13 조회 : 1258
설교일 : 7월 5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요 Jn 11:21,32

하나님의 부재 시리즈 The absence of God 2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If you had been here

Jn 11: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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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첫 현장 예배를 시작하는 주일입니다. ‘직접 뵈니 정말, 무지 반갑습니다. , 축복합니다. ㅎㅎ’

 

‘하나님의 부재,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나사로의 두 자매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재’를 원망하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우리도 이럴 때가 많죠? ‘주님이 도와주셨으면 될 일인데 .... why? 어디에 계셨나요, 그 때?

 

그런데 고의적인 지연, 일부러 예수님은 당신의 부재를 선택하셨습니다.

3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6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11 나사로가 ‘잠들었도다.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4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Why, 왜 예수님은 당신의 부재를 고의적으로 선택하셨을까요?

 

 

1. 예수님의 부재가 고통이요, 절망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32-33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주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은 주님이 안 계셨던 것 자체가 죽음의 원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원망을 하고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전부 울었고, 예수님도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러한 슬픔과 비극은 예수님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우리 인생은 허무합니다. 결국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사사기를 읽어보면, 하나님 부재시대의 타락하고 혼란했던 사회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리 마태, 세관장 삭개오‘돈 이면 다 된다고 말하는 현대사회의 우상적인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인생의 절망을 잘 알았기에 그들은 소유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사도 바울, ‘지식이 많았던 현대사회의 우상적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도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수가성 여인, ‘한 미모하던 인기녀, 몸자랑 현대사회의 우상적 인물’입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그들 모두는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하나님 없는 인생의 절망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임재가 소망임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하시니.

 

예수님은 가셔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의 임재는 소망의 표시입니다. 부재의 절망을 임재의 소망으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축구 좋아하시나요? 팀에서 실력좋고 인기좋은 선수는 초반부터 뛸때도 있지만, 정말로 몸값이 천문학적인 선수는 어떤 한 순간만 경기에 출장을 시킵니다. 처음에는 그 선수가 없어서 지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에 감독은 그 선수를 투입해서 경기를 역전시켜 버립니다. 그렇게 하므로 그 선수는 영웅이 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곧바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당신의 부재가 고통이요, 절망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때가 되었을 때 예수님은 당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임재가 소망임을 입증해 보이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임재가 소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성육신하신 분이 임마누엘의 예수님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메리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소망되신 주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요? 충분하지 않은가요? 그런데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재가 고통이요 절망이기에, 성령님을 보내셔서 이제는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소망의 주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숨 내 쉴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김도현 작사/작곡, 노래)

 

 

3. 예수님 임재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며 살아가야합니다. 부재와 임재사이, 기다림의 시간을 ....

그런데 부재와 임재사이에는 기다림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재와 임재가 주님의 시간이라면, 기다림은 우리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부재와 임재 때가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이 우리가 믿음, 소망, 사랑과 기도로 살아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우리는 초림과 재림 사이, (already)와 아직(yet) 사이를 살아가는 사이 신앙인들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메시야 대망신앙, 신약은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재림신앙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코로나로 힘들고 어려워도, 삶에 위기와 절망이 있어도, 죽음을 부활로 역전시키신 소망의 예수님이 지금은 부재해 보여도, 반드시 당신에 때에 임재하셔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실 것이기에 우리는 그 소망의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 도전과 결단>

예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그 임재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임재에 감사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