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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 Maker4 해도 너무 하네요(먹고 살일이 걱정될때)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21-01-24 (일) 07:49 조회 : 957
설교일 : 1월 24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왕상 1Ki 17:8-16

Way Maker 시리즈설교

4. 해도 너무하네요 That's too much

1Ki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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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Way Maker 시리즈, 첫 시간 ‘혼돈과 공허, 흑암 가운데서 세상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이 엉망인 우리 삶과 세상을 지금도 재창조해 가고 계신다,둘째 시간 ‘앞뒤가 꽉 막혀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바다에 길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 안에 길이 있다,지난 시간 ‘이유 모를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나의 가는 길을 아시기에 결코 고난은 헛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시간입니다.

 

먹고 살 일이 걱정될 때, 기근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엘리야를 먹이신 하나님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타락했던 아합왕과 이세벨시대에 선지자로 활동을 했습니다. 시대가 가장 악할 때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17:1절에 보면 이러한 북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엘리야는 큰 기근을 선포합니다.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아합왕과 이세벨은 선지자들을 많이 죽였던 터라, 하나님은 엘리야를 급히 그릿시냇가로 가서 숨어있으라고 하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서 엘리야를 먹이십니다. 미물을 통해서도 먹이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기근은 점점 더 심해지고 시냇물도 말라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은 사르밧 과부에게 가라고 다시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자신의 필요를 공급해 주기는커녕 더 이상 먹을 것도 없어 죽을 지경에 쳐해 있던 과부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여인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역사하셔서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

 

 

2. 엘리야의 자신 만만함은 어디로 부터

그런데 우리가 좀 더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사르밧 과부의 기적입니다. 엘리야가 만난 과부는 마지막 끼니를 먹고 아들과 함께 죽으려 하고 있었던 너무 불쌍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그 빵을 자신에게 먼저 달라고 합니다. 해도 너무 한 것 아닙니까? Thats too much. 이런 상황을 보고 ‘벼룩이 간을 빼먹어라’고 하죠.

 

17:13-1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러한 엘리야의 자신만만함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그것은 그릿 시냇가의 기적을 통해 얻은 믿음으로부터입니다. 어떻게 말도 안 되는 한낮 미물인 까마귀를 통해서 먹이실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릿시냇가를 체험한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의 현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없었던 과부는 엘리야의 요구를 듣고는 ‘두려워’했습니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굶어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 배고픔의 두려움. 가난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요? 배고플 때 뭐라고 말하죠? ‘배고파 죽겠다’그럽니다. 음식을 못 먹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죽더라도 실컷 먹고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보통 그러잖아요. 이 여인이 ‘어차피 죽을 거 한 끼 더 먹으면 뭐하냐 하고 그냥 좋은 일하고 죽자?’해서 준 것은 아니죠. 그런 의미로 본다면 이 여인도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결국 이 일로 살 길이 열리게 됩니다.

 

먹고 살 일이 걱정될 때, 우리도 이 과부가 가졌던 두려움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에게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한 가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신뢰하십시오. 이러한 기적을 경험해 보십시오. 기근 또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3. 사르밧 여인도 먹이신 하나님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까마귀와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먹이셨다는 것은 오늘도 당신의 사람들을 하나님은 여전히 먹이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촛점이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좀 더 나누고 싶은 것은 사르밧 과부도 먹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르밧(사렙다.) 두로와 시돈사이의 항구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들은 무역업으로 부자 상업도시(고대 페니키아=베니게, 신약시대 이후 fp반트=레바논 일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필이면 그 도시에 힘 없고 가난한 이방인 과부와 아들 가정에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또한 이 지역은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의 아버지 시돈 왕 엣바알(바알과 함께 한자)이 다스리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풍요의 신 바알신앙이 극심했던 곳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별 볼일 없는 이방인임에도 먹이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아합과 이세벨을 피해 이세벨 고향에 가서 바알신도 도와줄 수 없었던 과부의 가정을 통하여 기적을 행함으로 하나님만이 참신이심을 저들로 하여금 믿도록 하셨습니다. 훗날 유대인의 배척을 받으신 후 예수님도 이 지역을 방문하여 기적을 베푸시죠. ( 15:21-28, 가나안 여인 고치심)

 

 

4. 오늘 피었다지는 들풀도 입히는 주님

6:26-34에서 예수님도 이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자녀들인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돌보십니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이름도 모를 이방여인과 같은 인생도 입히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아닙니까? 하물며 피 값으로 사신 바 된 우리들을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먹고 살 일이 걱정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588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