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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컬러6 빌라델피아신앙 Philadelphia Style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5-09-13 (일) 10:19 조회 : 2115
설교일 : 9월 13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계 Rev 3:7-13

나의 신앙컬러 시리즈 6

빌라델피아 신앙 Philadelphia Style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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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교인 수양회가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사정상 참여 못하신 분들도 많았지만 참여하셨던 분들의 수고와 봉사로 아주 은혜롭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로 인사합시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엔 꼭 같이 갑시다!”


2. 그간에 교회행사로 주일설교에 공백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특식을 드시고 좋으셨지요? 오늘부터는 다시 일식을 드시는 겁니다. 일상적으로 집에서 먹는 밥 ㅎㅎㅎ. 아멘하시면 은혜가 될 것 같은데요. 자! 우리는 계시록 일곱교회를 통해서 신앙인에게도 7종류의 신앙의 스타일이 있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주님과의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스타일 신앙인, 가난함과 핍박 가운데서도 잘 싸우는 서머나스타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재혼하여 살아가는 버가모스타일,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는 이중적인 모습의 두아디라스타일,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믿음을 가진 사데스타일, 그렇다면 오늘 빌라델피아 신앙스타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3. 자! 7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모습이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열고 닫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과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 생사화복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마땅히 오늘 나의 삶의 열쇠도 내가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빌라델피아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와 대단합니다. 열린문 교회, 닫을 사람이 없는 교회. 열린교회 열린신앙인, 이것이 바로 빌라델피아 교회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안디옥교회가 그리고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열린문교회 열린신앙인의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암울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닫힌 문들을 열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다시한번 축복합니다.

 

4. 그런데 8절 이하에 보면 빌라델피아 교회가 이러한 하나님의 칭찬을 들을수 있었던 것은 그냥되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발견합니다. 열린교회 열린신앙인은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일까요?

 

첫째,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였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8b) 빌라델피아 교회는 형편과 여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큰 교회 많은 성도가 있는 힘있는 교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 small church, 작은 능력 little strength.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렇다면 빌라델피아는 힘없고 연약한 교회였지만 과연 무엇을 잘했던 교회였을까요? 세계적인 종말론 학자인 이광복목사님은 일곱교회를 일곱시대의 교회의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시대, 서머나 교회는 순교시대, 버가모 교회는 국교시대, 두아디라교회는 암흑시대, 사데교회는 종교개혁시대, 빌라델비아교회는 선교시대, 라오디게아교회는 종말시대입니다. 참조적으로 알아두시면 유익할 것 같습니다. 이 교회는 선교적 삶을 살았던 교회입니다.

 

빌라델피아라는 말은 본래 필로스(사랑)와 아델포스(형제)라는 두 단어의 결합입니다. 본래 버가모 왕국시대 이 지역의 통치자였던 유메네스 2세(Eumenes)는 전쟁에 나갈때마다 정치와 군사 지식이 탁월했던 동생 앗탈로스 2세(Attalos 11,BC159-138)에게 내정을 맡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민의 지지도가 높았고 인기가 많았던 그를 로마정부가 이용할 목적으로 그에게 왕위에 오르도록 충동했지만 앗탈로스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형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앗탈로스의 형제애’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이 빌라델피아라는 말의 유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터키어로 ‘알라세히르’(Alasehir)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도시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놀라운 형제사랑을 나누며 동시에 이런 사랑에 목말라하던 도시인들에게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이었는지요! 얼마나 본받을 교회인지요!

 

우리 안디옥교회는 작은 교회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성도간에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빌라델피아 같은 교회입니다. 여러분! 큰 교회가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인간의 관점과 다릅니다. 우리가 교회의 본질에 충실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린문을 두십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닫힌 문을 계속해서 열어가는 교회가 됩시다. 우리 한국사람들이 북미에서는 보잘 없는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죠. 주류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민자로서의 삶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세속의 물결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열린 문, 열린 기회를 주실 줄 믿습니다.

 

열린 교회 열린신앙인의 두 번째 특징은,

둘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교회였습니다. 9절입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받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하나님은 9절에 의하면 빌라델피아 교인들을 괴롭히던 유대인들 가운데 몇 사람이 회심하고 돌아올 것이며 10절에 의하면 그들에게 장차 다가올 환난과 박해의 시간에 주께서 그들을 특별히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작은 교회였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토록 완고하던 유대인들이 회심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동네에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야 그 교회 작지만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확실해. 어떻게 안디옥교회가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지?’ 성도 여러분. 우리가 특별히 많은 재능과 능력을 가진 신앙인들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세상 가운데에 당신이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셋째, 기둥같은 교회입니다. 12절에 의하면 이교회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둥같은 존재로 쓰임받다가 주앞에 기둥처럼 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이 필라델피아 교회가 있던 알세히르의 도시에 가면 6세기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사도 요한 교회에 6개(밖으로 3개가 드러남)의 거대한 돌기둥들만이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솔로몬의 성전 입구 좌우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바로 야긴, ‘저가 세우신다’와 보아스, ‘저가 지켜주신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생명은 단 하나뿐입니다. 인생의 기회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기왕에 인생을 사는 것, 기둥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왔가갔다만 하지 마십시오. 내가 가진 은사를 가지고 열심히 감당하십시오!


우리 안디옥교회의 제일 첫 번째 비전은 캠퍼스미션입니다. 지난 15년간 열심히 사역한 결과 에드먼튼에서 가장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묻습니다. 왜 교회비전의 첫 번째가 젊은이 선교입니까? 이제 보세요. 교회의 위기는 다음세대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젊은이 선교는 우리의 사명이 아닙니다. 이 시대의 사명인 것입니다. 곧 통곡할 날이 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을 키워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교회는 소망 있을 줄 믿습니다. 이 젊은이들이 장차 교회와 시대를 짊어지고 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기둥이 되도록 인재와 재목이 되도록 잘 키워야 합니다.

 

5. 옛날 초나라의 예왕 때 '변화'라는 사람이 높은 산에 올라갔다가 옥돌을 발견하고 그 옥돌을 왕에게 바쳤습니다. 왕은 전문가를 불러 감정을 시켰는데 그것은 옥이 아니고 돌이라고 했습니다. 왕은 노하여 국법에 따라 왕을 속인 죄로 변화의 왼쪽 다리를 잘라 버렸답니다. 그러나 변화는 억울하지만 그 참 옥을 알아 줄 날이 오겠지 하고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예왕이 죽고 무왕이 왕이 되었습니다. 변화는 이번에는 알아주겠지 하고 새 왕에게 다시 옥돌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마저 잘려졌습니다. 또 무왕이 죽고 문왕이 왕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변화는 새 왕에게 옥돌을 바치려고 3일 3야를 옥돌을 붙잡고 통곡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저 사람 그 돌 때문에 두 다리가 잘리고 병신이 되었으면 그만이지 무슨 욕심으로 상을 타려고 저러지!" 이 소식을 들은 문왕이 사람을 보내어 변화를 불러 그 옥을 감정한 결과 겉을 보니 영락없이 돌이였는데 겉을 깍아 내어 속을 보았더니 수정같이 투명하고 맑은 옥이 나타나는데 밤에는 빛을 환하게 밝히고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였습니다. 왕은 크게 감탄하여 변화에게 큰 벼슬을 주고 평생 동안 먹고 살수 있도록 부상을 주었답니다. ‘바보 하나님이 어디 있어. 적당히 눈치보며 살아. 네 주제를 좀 파악해라. 신앙은 무슨 신앙. 적당히 해 좀.’ 여러분! 이렇게 두 다리를 잃을 때까지 그 옥들을 지켰던 변화가 때가 되어 큰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보화인 믿음을 잘 간직해서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6.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열린문과 같이 승승장구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고 성전기둥이 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7. 이제 문제는 이 기회 앞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