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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컬러7 라오디게아신앙 Laodicea Style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5-09-20 (일) 11:30 조회 : 2312
설교일 : 9월 20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계 Rev 3:14-22

 

말씀 되새기기 라오디게아 신앙스타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1. 14절은 라오디게아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멘이시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신 하나님.’ 하나님의 모습은 아멘, 충성되시고 참된 증인, 창조의 근본 등으로 나타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야말로 가장 믿음직스러운 분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흐리멍텅하고 충성되지 못한 라오디게아 교회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2.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교회 혹은 라오디게아 신앙의 문제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미지근한 신앙인: 15-16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이것은 마치 이 도시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가 인근의 유명한 온천지대인 히에라볼리(파묵칼레-목화성)에서 이 도시 라오디게아까지 온천수가 수도관을 통해 7-9km의 거리를 흘러 들어오는 동안 미지근해지고 이물질 등으로 오염되어 그대로는 마실수 없는 쓸모 없는 물의 상태, 그래서 토해 버릴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무서운 말씀은 ‘토하여 내리라’는 것입니다.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 없는 신앙. 미지근한 신앙이 문제입니다. 19절에 보시면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하십니다. 이민생활, 유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지근한 태도로는 아무것도 이룰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둘째, 구원받았으면 돼! 안주하는 신앙인: 17절 보시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외적으로는 풍요했으나 내적으로는 빈곤했습니다. 외적빈곤 내적풍요로웠던 서머나 교회와는 정반대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자신들은 부족한 것이 없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칼한 것은 이 도시는 당시에 돈이 많아 금융업이 성행했고, 양모 의류사업으로 좋은 피복을 생산했으며, 이름난 안약을 많이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가난함을, 벌거벗음을, 그리고 보지 못함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적으로는 그들은 주님 보시기에 가난했고, 헐벗었고, 눈 먼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3. 그렇다면 미지근하고 안주하는 교회와 신앙들에 대한 대안은 없는 것일까요?

주님은 그래서 ‘연단받으라, 다시 흰옷을 입으라,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하십니다. 더 나아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할 것이니 열심을 회복하고 회개하라 하십니다. 그러면서 20절 너무나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을 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으로 흔히 이해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라오게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특별히 미지근한 신앙, 구원받은 것에만 안주하는 신앙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바로 이러한 라오디게아 신앙인들에 대한 대안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주님을 영접하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 더 적극적으로 ’이제는 미지근한 신앙과 안주하는 신앙을 넘어서 주님과 교제하라, 관계하라’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왜 영적침제가 오며, 안주하고, 열심히 없는 미지근한 신앙인이 되어갈까요? 주님과 관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주님의 위대한 초청인 것입니다. ‘나와 함께 먹고 마시자. 나와 동거동락하자. 난 너와 함께 동행하고 싶다.

 

 

외적으로 부요했던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향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그 부요를 얻을 수 있는 곳은 그리스도에게서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팩톨루스(Pactolus)강이나 포토지(Potosi)광산으로 보내지 않고, 값진 진주이신 그 자신에게로 초대하신다.

 

 

 

4. 오늘도 주님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미지근하고 안주하는 신앙을 버리고, 나와 함께 다시 시작하자! 추수의 계절 가을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주님과 함께 다시 시작합시다. 내려놓았던 기도, 성경을 가까이 합시다. 가을은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계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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