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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속에 있는 빛 The light within you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5-11-15 (일) 09:30 조회 : 2187
설교일 : 11월 15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눅 11:33-36

네 속에 있는 빛 The light within you

1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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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애인들을 향한 일반인들의 처우가 어떠한지를 아주 재미있게 실험했습니다. 한 사람이 소경인척 연기하면서 $50달러짜리 지폐를 행인에게 주며 ‘이 5달러짜리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어 주세요’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님이 주는 $50달러 지폐를 받고 동전 5달러를 주고는 이게 왠 횡재냐 싶어 신이나서 도망을 갔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당신이 준 돈은 5달러가 아니고 50달러짜리라고 정직하게 말을 하기도 했구요. 참 사람들이 너무 한다 싶었습니다. 앞을 못보는 사람이라고 저렇게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행자는 이것이 오늘날 장애인들을 향한 사람들의 변하지 않는 수준이라고 설명을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보지 못하면 넘어지고, 심지어 사람들에게 속고 말죠. 신앙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눈과 마음이 닫혀있으면 듣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죠!


2. 오늘은 그래서 이런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 안에 빛이 어두워 있지 않은가?

 

3. 오늘 본문 35절에 보면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하십니다. 물론 이 말씀은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질타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이땅에 오셨는데, 그들이 진리의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이 어두우면 볼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몸도 어둡게 된다’고 하시면서, 우리 안에 빛을 그릇안이나, 책상아래 두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잘 보일수 있는 곳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4. 우리 안에는 빛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빛입니다. 믿음의 빛입니다. 신앙의 빛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빛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빛들이 왜 어두워졌을까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세상일에 바쁘다보니 빛이 어두워졌습니다. 옛날에는 안그랬는데 먹고사는 일이 바쁘다보니. 사업체가 없을때 열심히 기도해서 좋은 사업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사업하다보니까 사업 때문에 신앙생활을 잘 못하다보니 믿음의 빛이 꺼져버렸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주신 축복인데 축복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진 거에요. 그럴수 있어요.

 

둘째는 죄로인해서 빛이 어두워졌습니다. 죄는 어두움이라고 했습니다. 죄가 우리 마음안에 들어오면 빛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빛이 타오르면 반대로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있습니다. 죄로 인해 마음이 어두워지면 어둠의 지배를 받게 되어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죄를 숨기기 위해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밧세바에게 남편이 있습니다. 자신의 가장 충복중에 충복인 우리야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마음이 어두어지니까 그 충복인 우리야를 전쟁터에 죽도록 사주합니다. 나단선지자가 이 사실을 알고는 다윗에게 나와서 충언을 합니다. ‘양과 소를 많이 가진 부자와 겨우 양한마리를 가지고 있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는데,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그런데 부자는 자기가 가진 양을 잡지않고, 겨우 양한마리가진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다가 자기 손님을 대접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다윗은 그런 놈은 심판해서 4배로 배상을 물리도록해야 한다고 화를 냈습니다. 지금 자기의 죄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것이 자기 이야기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나단 선지자가 ‘그것이 바로 왕이요’ 소리를 칩니다. 그제서야 눈이 밝아져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죄는 우리의 양심과 마음, 그리고 영적인 눈을 어둡게 만듭니다.

 

셋째는 게을러서 빛이 어둡게 되었습니다. 무얼 어떻게 해야 내 속에 있는 믿음의 빛, 신앙의 빛이 밝아지는 지 모르는게 아닙니다. 대다수 많은 그리스도인이 알면서도 게으름에 붙잡혀서 빛이 꺼져가도록 방관만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빛이 환해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게 아닙니다. 다 알아요. 그런데 게을러져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때 교회사역하랴, 공부하랴 정신이 없어요. 학교수업 마치고 주말이 되어 교회로 달려갑니다.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100km 이상 속도를 냅니다. 그런데 잠이 쏟아집니다. 그러면 차를 세우고 좀 자던지, 바람을 쐬던지 해야 하죠? 그런데 그게 귀찮아요. 그러니까 눈이 감기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합니다. ‘어 이러다 죽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면서 그냥 계속가는거에요. 게으른 사람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하고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차를 얼른 세우고 차 밖으로 나와서 운동을 좀 하고 정신을 차리고 운전을 다시해야죠. 그런데 차 밖으로 나와서 운동하는게 귀찮은 거에요. 어떻게 하면 내 속에 있는 믿음의 빛이 환해지는지 다 알아요. 그런데 교회나가기 귀찮아요. 말씀보기 귀찮아요. 기도하기 귀찮아요.

 

마지막은 타성에 젖어서 빛이 어두워졌습니다. 예배 안드리는게 아닙니다. 성경을 않읽는게 아닙니다.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타성에 젖어서 건성으로 합니다. 수동적으로 합니다. 마지못해 흉내만 냅니다. 형식적인 종교생활만 합니다. 겨우 그냥 교회 출석만 합니다. 좀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못하는게 아니라 않하는 거에요.


5. 내 속에 빛이 어두워지니까 내가 나를 모르게 됩니다. 왜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런 말을 많이 하죠.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 자신을 못보는 겁니다.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며서 다른 사람의 눈속에 있는 티를 빼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번에 원장님을 보내주신 이유가 무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자신을 못보니까 하나님이 깨닫게 하려고, 보게 하려고 보내신 겁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실 때에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셨습니다.

 

6. 내 속에 있는 빛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일까요? 오늘 말씀을 확장해서 적용해 봅시다. 믿음의 빛입니다. 은혜의 빛, 사랑의 빛, 소망의 빛, 비전의 빛, 사명의 빛 등등입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어떤 문제 때문에, 혹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이런 빛들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는 겁니다. 예전에는 사명의 빛이 활활 타올라서 열심히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명의 빛은 커녕 나 자신의 믿음도 지키기 힘든 빈털터리가 되어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전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의심으로 충만합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했는데, 이제는 내가 이래서 천국갈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두어져 있습니다.

 

7.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비전과 사명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분주함과 죄악과 게으름과 타성을 몰아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빛이 타오르지 못하고 어두우면 나 자신을 볼수 없고, 결국은 속고 속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속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 자신에게 속아서 살게 됩니다.

 

8. 더 나아가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침침한 전등처럼 비추지 못한다면 나 자신도 문제지만 더 나아가 눈먼소경처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됩니다. 나 자신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9.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빛은 타오르고 있는가?’ 믿음의 빛, 은혜의 빛, 사랑의 빛, 소망의 빛, 비전의 빛, 사명의 빛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