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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된 이유 The final condition is worse than the first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5-11-22 (일) 14:58 조회 : 5184
설교일 : 11월 22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눅 Lk 11:24-26

1. 오늘은 좀 무서운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본문을 읽어서 아시겠지만, 귀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비유는 그 안에 담기어진 깊은 뜻이 있습니다.

 

2. 어떤 한 사람이 귀신에게 사로잡혀 살다가 그 귀신이 쫓겨나갔습니다. 귀신으로부터 놓임받은 사람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것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살던 사람이 어느날 감동을 받아 지금까지 죄에 사로잡혀 살던 자신의 마음을 회개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 내가 이제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 다시는 마귀가 좋아하는 죄를 짓지 말아야 겠다.’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참된 복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좀 더 적용해 본다면,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마음은 ‘이제 청소되고, 수리된 마음’입니다.

 

3. 그런데 쫓겨나갔던 귀신이 나가서 이곳저곳 쉴 곳을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전에 자기가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와 봅니다. 그런데 그 집이 깨끗이 청소되고 수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귀신이 접근하지 말아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귀신이 작전을 바꿉니다. 자기 힘으로 그 집을 차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귀신은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그 집을 점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 심하게 됩니다. 참된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깨닫고, 경험하고, 알게된 복음,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뜻을 계속해서 잘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깨닫고 받은바 된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해서,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을 빼앗는 것보다 성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처럼요.

 

4. 깨끗이 청소하고 고장 난 곳을 고쳤어도, 빈집으로 방치해 둔다면 들짐승이 그 집을 차지할수도 있고, 빈집인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 침입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지속적인 관리가 되지 않는다면 청소하고 고쳐도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영적인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통회했다고 해도 그 은혜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은혜를 유지하지 못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다시 귀신이 좋아하는 이전의 육적인 상태로 돌아가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5. 사탄은 참 교묘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도록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이제는 작전을 바꿉니다. 어떻게 해서든 은혜위에 서지 못하도록, 은혜를 계속해서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도 없이 경험하는 것이죠. 기도하다가 말씀 듣다가 은혜를 받습니다. 큰 결심을 하고 예배당을 떠나갑니다. 그런데 예배당을 떠나가는 순간, 집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은혜를 다 까먹어 버리는 공격에 무너져버리는 것이죠.


6. 은혜를 받는 것도 어렵지만 잃지 않고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것입니다. 뉴튼의 관성의 법칙 처럼 모든 물체는 계속 제자리에 있으려 합니다. 그래서 변화된 삶을 살려면 제자리에 있으려는 힘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냥 놔둬. 나는 안되는 가 봐.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그냥 이렇게 살래.’ 한두번 노력해보다가 안되면 오히려 시도해 본만 못한 결과를 초래해서 좀처럼 변화된 삶, 새로운 삶 가운데로 다시는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나중 형편이 더 심하게 된 이유는 청소된 은혜로운 마음을 계속해서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고, 깨달았고, 경험했다면 그 은혜를 계속해서 잘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 그렇다면 나중 형편이 더 심하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은혜를 계속해서 지켜야 하겠죠. 은혜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더 깊이 살펴보면 나중 형편이 더 심하게 되지 않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청소된 집은 주인이 없는 빈집이라고 말씀하십니다(12: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아무리 큰 은혜를 체험한 사람일지라도 인생의 주인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인생은 다시 귀신에게 정복당하는 인생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곱 귀신보다 더 강한 주인이 지키고 있으면 일곱귀신도 어쩔수 없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나 내가 인생의 주인일 때 더 강한 것이 덤벼들면 그 인생은 무너지고 맙니다. 자신의 의지와 힘이 강할때는 귀신도 쫓아내고, 인생의 집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자신보다 더 강한, 일곱귀신이 덤벼들때는 어쩔수 없이 정복당하고 마는 것이죠. 내가 주인인 인생의 한계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아무리 강한 마귀가 덤벼들어도 능히 주님께서 물리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 인생의 주인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내가 주인인 인생에서 예수님이 주인인 인생으로...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은 바뀌었나요? 누가 내 생각의 주인입니까? 누가 내 행동의 주인입니까? 누가 내 물질의 주인입니까? 누가 우리 집의 주인입니까? 예수님에게 주인의 자리를 내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은 안전합니다. 우리 인생이 주님의 것이기에 주인이신 주님께서 지키십니다.

 

둘째, 지속적인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은혜를 경험하고 눈물을 흘렸을 지라도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제가 끊어질 때 은혜의 마음은 점점 식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사람이 강팍해집니다. 주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이 교만해집니다. 그러나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주님의 은혜가 메마르지 않습니다. 강팍하지 않습니다. 겸손합니다.


8. <나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예화

 

*프레드는 한 오래된 생선구이 요리점에서 일해온 청년이다.

이 생선구이의 요리집은 일차대전 이후 한번도 수리한 적이 없어서 녹슨 탁자며,

때묻은 벽지와 벽의 틈들이 군데 군데 갈라져 있었고,

털이 다 빠진 양탄자는 이제 본래의 색조를 구별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프레드 생선구이 요리점"은 온 마을 사람에게 지저분하고

정돈 안된 상태를 설명하는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문구가 이 요리집 창에 붙었다.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곧 가게 이름도 바꿨다. 비록 프레드는 여전히 그곳에서 일을 했지만. 그에겐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단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지시받고 그에 따라 행해야 했다.

갑작스런 대청소였다.

낡은 식탁들은 던져졌고, 새로운 벽지는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었고

넓고 푹신한 양탄자는 들어서는 모든 이들에게 아늑함과 포근함을 선사했다.

비록 똑같은 장소, 똑같은 요리였지만 거기에는 새로운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시요, 경영자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마치 그분이 경영하는 레스토랑과 같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사울은 그의 삶에 창에 "주인이 바뀌었습니다"라는 구절을 붙였다.

 

예수와의 만남은 마치 낡고 오래된 헌 집에서 깨끗하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것과 같다.

 

비록 사람은 같을 자라도 이젠 처할 장소가 달라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처럼 전적인 삶이 변화하는 혁명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주님께서 그의 손가락을 들어 지시하신 당신의 구석구석은 바뀌어지고 있는지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돌아보라.

만약 당신이 여전히 오래된 프레드의 생선구이 집에 있다면 당신은 예수님께 다시금

새로운 변화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우리가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