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414건, 최근 0 건

함께1 함께 품으라 Embrace other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5-12-06 (일) 06:59 조회 : 1840
설교일 : 12월 6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빌 2:5-8

함께 시리즈

1. 함께 품으라 Embrace other

2:5-8

==================================

 

1. 인사 ‘한 달 남았습니다.

 

2. 요즘 경제가 어려워 연말연시가 그 어느 때 보다 힘든 때입니다. 어려운 때에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시련을 이겨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옛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힘들때 일수록 뭉쳐야 산다.’ 하나가 되어 힘을 합치면 고난도 이겨낼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오늘부터 ‘함께’라는 시리즈로 2015년 한 달을 마무리하고 힘찬2016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3.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사도바울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힌 죄인의 신분으로 빌립보교회를 생각하며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교회가 시작된지 얼마안된 빌립보 믿음의 공동체는 박해와 시련을 만났습니다. 사도바울도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럼에도 어려운 때 절망하지 말고,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한마음을 가지고 기쁘게 주님을 섬기(2:1-4)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말합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4.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성육신의 마음입니다.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성육신의 마음이란 ‘하나님을 배신한 죄인들인 인간을 용서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말합니다. 성육신의 마음은 이해와 용서의 마음입니다. 희생의 마음입니다. 이해와 용서, 희생의 성육신적 마음은 ‘품는 마음, embrace’입니다. 한글성경이 참 명번역입니다. ‘이 마음을 품으라’했는데 품는 마음이 성육신 마음인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문제가 발생했을 때 큰 절망은 어려운 문제에 있는게 아니라 마음이 나누어지는데 있다고 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마음이 하나로 합쳐지면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뿔뿔이 흩어지면 문제가 문제가 되고, 문제가 절망이 되는 것이죠. 문제가 있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따라서 우리들이 가져야 할 마음은 예수님의 성육신적 마음, 즉 함께 서로를 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5. 품는 마음은 여러 가지 마음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품는 마음중에 하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언제나 품습니다. 1,2,3,4 따지고 계산하고 하지 않습니다. 이해와 용서, 사랑과 희생의 마음으로 먼저 품습니다. 자식을 끌어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 일수록 가정에서 이러한 부모의 마음이 풍성해야 삽니다. 직장에서 일터에서 밖에서 학업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집에서도 따지고 계산하고 그러면 안식을 누릴수 없습니다. 좀 한심하고 부족해도 부모의 마음으로 가족끼리 서로를 가슴에 품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나는 나이가 어린데, 결혼도 안했는데 무슨 부모마음으로 품으라 하시나?’ 그런데요. 이 말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수도 있어요. 나이가 어려도 부모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이야기하면 바보라고 하는데 설교를 위해서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중에 하나가 자기 엄마보고 그러는 거에요. ‘나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엄마 머리깎았어? 소녀같애. 엄마 그 브럿지 어디서 샀어요? 밀리어네어들이 하는 브럿지 같애.’ 지난주에 조세핀 킴 하버드교수님이 오셔서 이민가정 자녀교육에 있어서 이중문화속에서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이라고 하셨잖아요. 제 아내하고 제가 우리 아이 말을 듣고 그랬어요. 우리집은 부모가 아이 자존감을 높여주는게 아니고, 애들이 우리들의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부모마음은 꼭 윗사람만 아니고, 나이가 적어도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믿습니다. 부모와 같이 품을 수 있다면 여러분의 절망도 큰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줄 믿습니다.

 

6. 품는 마음중에 또 다른 마음은 ‘목자의 마음’일 것입니다. 시대가 참 어렵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조국을 생각하면 아침마다 눈물이 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시대의 문제를 이야기 합니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목자의 마음을 가진 리더가 없기 때문입니다. 리더는 무엇을 꼭 잘 해야 하는 기능직이 아닙니다. 리더는 목자의 마음을 가진 자이면 됩니다. 부족한 것들은 리더를 따르는 자들이 보충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리더는 따르는 자들을 마음으로 품어줄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의 삼국지를 참 많이 보았습니다. 삼국지를 읽어보면 세상이 보인다고 하지요? 삼국지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사실 유비가 아닙니다. 조조입니다. 조조는 갖출 것을 잘 갖춘 오늘날로 보면 가장 탁월한 리더입니다. 그러니까 큰 나라를 이루잖아요. 반면에 유비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매일 피난다니고, 나라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데 삼국지의 주인공은 조조가 아니고 유비입니다. 왜 중국 사람들이 지금도 유비를 따릅니까? 조조에게는 부족한 것이 유비에게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입니까? 목자의 마음입니다. 유비는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들을 가슴으로 손과 발로 품었습니다. 참목자가 부족한 조국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곳에서 목자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품으십시오.

 

7. 교회안에서 어려운자, 어린자들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공동체라는 곳은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래서 별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도 다르고, 말과 행동도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품습니다. 말과 행동, 믿음이 어린사람들을 품습니다. 품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공동체는 위로와 격려가 넘쳐납니다. 사랑이 넘칩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품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불평과 불만들이 넘쳐납니다. 증오와 비방들이 넘칩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은혜가 떠납니다. 서로 격려해볼까요. ‘내가 품겠습니다.’ 이게 ‘교회의 일꾼의 마음’입니다.

 

8. 진주조개는 이물질도 품어 진주를 만들어 냅니다. 안델슨의 동화중에 ‘미운오리 새끼’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오리중에 하나가 유독 다른거에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백조였죠. 지금은 오리같지만 백조로 태어날 때가 있다는 교훈을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관점말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는 실제로 미운오리 새끼였습니다. 생긴 것부터 행동하는 것도 다른 오리들과 달랐어요. 그렇다고 오리 엄마가 이 알을 버려버리지 않았어요. 이 미운 오리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았어요. 품었어요. 오리엄마가 백조를 길러낸 겁니다. 저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운 문제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물질을 품어 진주를 만들어내는 조개처럼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는 문제들을 품으셔서 진주를 만들어 내시기 바랍니다. 미운오리새끼를 품어 백조를 만들어내는 엄마오리처럼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품으셔서 백조를 만들어 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 모든 사람들을 품었습니다. 그중에 나같은 죄인도 들어있습니다.

 

9. 제가 군대 신병훈련소에 입대했을 때 아주 무식하게 생긴 ‘해골’이라는 별명을 가진 무서운 조교를 만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키가 거의190cm에 정말 고릴라 같이 생긴 조교였습니다. 옛날 전두환대통령 시절 깡패들을 잡아다 교육시켰다던 가평 현리 훈련소의 생활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특히 해골조교는 아주 악랄했습니다. 그런데 훈련이 다 끝나고 출소를 기다리는데 이 조교가 아주 의미있는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당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조교 왈 당구는 남자들이 꼭 알아야 할 인생의 철학이 담겨있는 놀이라는 겁니다. 당구대는 넓은마음, 공은 둥근마음, 큣대는 곧은마음, 촐크는 희생하는 마음. 그러면서 건달들이 담배피면서 깡패소굴로 만들어버린 당구장을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을 했습니다. 당구야 말로 신사들의 놀이문화라는 겁니다. 저는 일순간에 그 조교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습니다. 넒은마음, 둥근마음, 곧은마음, 희생하는 마음. 이 마음들이 다 예수님의 마음, 성육신의 마음, 품는 마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