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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2 함께 울고 웃으라 Rejoice and weep together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5-12-13 (일) 15:45 조회 : 1914
설교일 : 12월 13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롬 Ro 12:15

1. 연말연시 한해를 마감하고 시작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어려운 시대를 이겨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함께 시리즈, 지난 주 ‘함께 품으라’에 이어서 두 번째 시간입니다.

 

2. 중국 천안문광장을 방문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천안문 광장에 있는 자금성입구에는 마오, 모택동의 초상화가 걸려있습니다. 모택동이 주도한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오천만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자금성에 모택동의 초상화를 걸어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모택동의 사상 때문입니다. ‘인민제일주의 사상.’ 그는 공산주의자였지만, 백성들과 울고 웃으며 늘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인들의 가슴에는 인민들과 동거동락했던 모택동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개인주의가 당연시되는 오늘을 살아가는 북미 이민자들에게 어쩌면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함께함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군중속에 고독이라는 말처럼 점점 더 개인화 되어가고 있는, 마치 섬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이 ‘함께’라는 주제는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도 생각되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이러한 현상이 과연 옳고 그른 것인가를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계실까요?

 

4. 오늘 본문의 15절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라.’ 기쁨을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기쁨을 먼저 말하는 이유는 기쁜 일은 슬픈 일보다 나누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슬픈 일에는 쉽게 동참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잘되어 축복할 수 있는 기쁨의 자리에는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함께 하기가 어려워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중국의 3대 유가사상가 중에 두 번째는 공자 다음인 맹자입니다. 그런데 이 맹자는 항상 옳은 말만 했기 때문에 왕들이 국사로 책봉을 꺼려했습니다. 맹자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왕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이 ‘민본사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관직에 나아가보지 못한 분입니다. 그의 핵심사상을 담은 문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민락. 즉 백성과 함께 즐거워한다’는 말입니다. 제 서재에도 액자로 걸어두었습니다. 제가 여민락이라는 글귀를 제 방에 걸어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 뿐만 아니라 목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목회, 성도들과 함께 소통하는 목회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번 주중에 내년도 사역 전반에 걸친 정책을 수립하는 당회가 있었습니다. 장로님들이 목회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목회자 살림이 어려우니까 사례비를 조금이라도 올려야하지 않을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차도 7년을 탔는데 이제 고장도 날때도 되었고 하니까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말씀하셨습니다. 참 감사하죠. 어떤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올려달라고해도 안된다고 안된다고, 그래서 서로 얼굴붉히고 갈등이 생기는 교회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랬습니다. 사례비 동결해주십시오. 자동차도 고장날 땐 나더라도 그냥 타겠습니다. 지금 경기가 어려워서 해직되고, 청년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갈때가 없어 힘들어 하는데, 마음만이라도 이렇게 해서 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장로님들도 다같은 마음이셨어요. 그래서 기분좋게, 은혜롭게 당회를 마칠수 있었습니다.

 

5.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고통도 함께 나누라 합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정서적 교감이 부족한 관계, 가정,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교회도 세상과 소통이 안되어가고 있습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한번쯤 해보셨을 것 같은데, 아이 앞에서 웃는 표정을 지어보셨지요? 어떻게 반응합니까? 자기도 따라서 깔깔 웃습니다. 반대로 슬픈 표정을 지으면 어떻게 반응하죠? 아이가 울먹울먹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살고 있나요? 어려운 시대,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지지자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힘이 되어 주는 것이지요.

 

6. 예수님은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삶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11:33-36절은 보면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시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였는가 하며.” 사랑하는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와 동거동락하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이런 질문을 주님께 던지곤 합니다. 나의 고통에 순간, 힘든 순간에 예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밤새 폭풍우가 몰아쳐서 텐트가 날아가고, 밤새 춥고 캄캄한 어둠속에서 고생하다가 동이트면서 폭풍우가 멈추었습니다. 아이들: 하나님은 안 계신가봐요. 집사 부부:무슨 얘기냐? 아이들: 아니, 우리 가족이 밤새 고생할 때 하나님은 뭘 하신 거예요? 집사 부부: 이런, 하나님은 밤새 아침을 만들고 계셨잖아. 봐라, 얼마나 평화스런 아침을 우리에게 주셨니? 예수님은 이런 분입니다. 우리의 고통속에 함께 거하십니다. 그냥 우리를 외면하고 버려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소망을 준비하고 계신분입니다. 아멘.

 

7. “찬양하리라 생활속에 거하시는 우리 주 예수를 / 힘든 순간에 나를 찾아오셔서 자녀로 삼아 주셨네 / 나에게 주신 주의 놀라운 사랑 다른 사람들 모르지만 / 근심과 걱정속에 찾아오신 주님의 위로하심을 / 오늘 주의 뜻대로 다니면서 주의 크고 깊으신 / 아름다운 일들을 능력주는자 안에서 / 나는 할 수 있어요.

 

8. 전쟁이 한창이던 때 어느 부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장교가 전투 중에 부상당한 환자들을 돌보다가 심한 상처를 입은 병사가 애타게 물을 찾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쟁 중이라 물이 귀했지만 장교는 자신의 수통에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내주었습니다. 목이 무척 말랐던 그는 무심코 마시려다가 동료 병사들의 눈길이 자신에게 모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이 귀한 상황이라 모든 병사들이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수통을 입에 대고 꿀꺽 꿀꺽 소리를 내면서 물을 마신 후 다른 병사에게 수통을 넘겼습니다. 수통을 넘겨받은 병사가 마시려고 보니 물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 병사는 깊은 눈빛으로 동료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꿀꺽 소리를 내며 맛있게 물을 마신 후 수통을 또 다른 병사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렇게 돌아가며 모든 병사들이 물을 마셨습니다. 마침내 수통이 장교에게 돌아왔을 때 놀랍게도 수통의 물은 처음 그대로였습니다. 모든 병사들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고 더 이상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갈증을 해소한 것은 물이 아니라 뜨거운 동료애였습니다.

 

9. 어떤 공동체든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고통을 함께 나누며, 사랑 가운데 자신을 양보할 줄 아는 헌신의 삶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필요합니다. 그 때 그 가정, 그 교회, 그 나라는 하나 되는 가정, 교회, 나라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