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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4 함께신뢰하라 Trust each other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5-12-27 (일) 06:38 조회 : 1889
설교일 : 12월 27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고후 7:13-16

4. 함께 신뢰하라 Trust each other

고후7: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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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말연시 한해를 마감하고 시작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어려운 시대를 이겨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함께 시리즈, 지난 시간 ‘함께 품으라, 함께 울고 웃으라, 함께 짐을 지라’에 이어서 마지막 네 번째 시간입니다. 서로 인사할까요? ‘한 해 동안도 함께해서 좋았습니다.

 

2. 어느날 광고를 보고 있는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참으로 쓴웃음이 나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광고의 문구는 ‘의심이 안심입니다.’ 요즘 인터넷 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보이스 피싱이란 신종어가 나올 정도로 범죄가 많다보니까 주의하라는 광고이긴 한데 왜인지 참 씁쓸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모습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신뢰가 사라진 시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시대가 이 시대의 밑그림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의심사회, 신뢰가 사라진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3.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린도교회에 대한 약간의 배경을 좀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50-52년경) 그리스에 세운 교회 중 하나입니다. 글라우디오 황제 칙령에 의해서 로마에서 쫓겨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그 집에 머물면서 천막을 짜는 일을 하는 가운데 복음을 전해서 세운 교회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53-58년경) 중에 에베소에서27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고린도 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고린도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파당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니라는 점을 문제삼아 바울을 불신하고 그의 가르침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의 문제들을 꾸짖으며 권면하기 위해 첫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를 써서 고린도교회로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도바울이 직접 마케도냐를 거쳐서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려고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마케도냐에 이르렀을 때 고린도교회로 미리 보냈던 그의 제자 디도가 고린도로부터 와서 아주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 소식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을 신뢰하지 못했던 고린도교회가 바울의 편지를 받고 회개하여 바울을 다시 신뢰하게 된것에 대해서 바울은 몹시 기쁘고 위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3절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4. 그런데 14절을 보시면 이러한 갈등의 상황 가운데서도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교인들을 향하여 가지고 있었던 마음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그에게, 디도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바울을 불신하여 파당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믿었을 뿐 아니라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바울의 믿음대로 고린도교회는 바울을 재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염려하였지만 변함없는 바울의 신뢰는 무너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6절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5. 불신의 시대, 그래서 더욱 더 어렵고 힘든 시대를 지나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은 몇단어로 표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위로, 안심, 자랑, 심정이 깊었다, 기쁨.’ 이 단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어려운 시대속에 살아가더라도 서로 함께 믿고 신뢰하게 되면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되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래서 기쁨이 넘치며, 결국은 서로를 자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6. 요즘 이런 말이 교회안에서도 안통한다는게 불행한 일입니다. “교인들이 목사를 믿어야지, 목사도 교인들을 믿고.” 어쩌다가 교회안에서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풍조가 생기게 된 것일까요? 서로를 믿어주십시오! 서로를 신뢰할 때 힘이 나고 용기가 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들이 자꾸 잔소리를 하면,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자꾸 삐딱하게 나가는 겁니다. 부모님은 아이들 잘되라고 할 지 모르나 아이들은 부모에게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집에 들어와도 위로가 안되고, 기쁨이 없고, 심정이 떠나가니까 결국 집 밖으로 뱅뱅 도는 거에요. 남편들을 믿어주세요. 집안에서 남편들을 믿지 못하고 자꾸 잔소리하면, 밖에 나가서도 기를 피지 못하고 삽니다. 아니면 반대로 집 밖에서 괜히 쓸데없는 일에 자존심 상해하고, 허풍으로 큰소리를 치게 됩니다. 그러다가 엉한 여자같지 않은 여자, 여우라고 하데요, 별볼일 없는 여시같은 여자에게 빠지는 거에요. 반대로 남편되시는 분들은 아내들에게 믿음을 좀 주세요. 여자들은 남편을 못 믿으면 그 관심이 엉뚱한 데로 가요. 대표적인게 자녀들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게 됩니다. 또는 쇼핑, 외모같은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것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겁니다. 그런 것을 통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에요. 가족간에 서로 믿음을 줍시다.

 

7. 사회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함께 신뢰하려고 할때에 그 신뢰를 깨트리는 주범이 있습니다. 바로 ‘무책임’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려면 서로를 책임지려는 책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의식이 깨지면 신뢰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8. 캐나다는 한국처럼 시위같은거 별로 안하죠. 해도 과격하지 않아요. 그래도 자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주민들입니다. 왜 원주민들은 그렇게 자주 시위를 하나요? 역사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그래요. 무슨 상처입니까? 백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상처입니다. 원주민들은 원래 서류 같은게 없었던 분들이지요. 그들은 말이 곧 계약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인들이 와서는 ‘너희들이 이렇게 이렇게 땅을 내어주면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해줄게.’ 그런데 좋은 것은 하나씩 하나씩 다 빼먹으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아요. 신뢰가 깨진 겁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이제는 대항할 힘도 없어졌어요. 그래서 고작 하는게 피켓들고 시위하는데 ‘Idle no more. Idling하지 말라는 겁니다.

 

9. 신뢰할 수 있는 관계는 책임감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더 나아가서 어떤 한사람이 먼저 믿어줄 때 신뢰할 수 있는 관계는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먼저 고린도교인들을 믿어주었습니다. 내가 먼저 상대방을 믿어줄때 상대방도 의심을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네가 먼저가 아니라 내가 먼저 믿어주기를 시작하십시오.

 

10.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믿으셨지요. 그런데 그 신뢰를 누가 먼저 깨트렸습니까? 아담과 하와인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할 때에 하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되는 것입니다.

 

11. 예수님과 함께 갑니다. <어느 성당 신부님 두 사람이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과속으로 가다 단속 경찰에 걸렸다. 면허증을 내라고 하자 신부님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으니 사고날 염려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경찰은 “아 그렇습니까? 오토바이에 세 사람이 탔으면 당연히 교통위반으로 스티커를 떼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어려운 시대를 또한 이겨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헬렌 켈러. Walking with a friend in the dark is better than walking alone in the light.” 서로 함께 믿음으로 어두움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 15: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14. 고후 7:16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