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414건, 최근 0 건

살아난 청년 Young man alive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6-01-17 (일) 09:33 조회 : 2829
설교일 : 1월 17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행 20:7-12

살아난 청년 Young man alive

20:7-12

====================================

 

한해가 시작되는 1월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저는1월은 시작의 달이므로 한해의 밑그림을 그려보는 시간이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해를 한번 그림 그리듯이 스케치 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2016년 한해를 시작하면서 어떤 그림을 그려보셨습니까? 그래서 1월의 설교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가슴에 품어보는 시간이 되었음 합니다.

 

요즘 사회일각에서 가장 대두되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청년문제일 것입니다. 청년의 문제는 사회문제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희 안디옥교회가 다른 교회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청년정신으로 목회하는 교회’일 것입니다. 따라서 한해를 시작하면서 오늘 우리는 우리가 왜 청년에 대해서 주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그림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1. 청년 유두고처럼 다음세대가 죽어가고 있다.

바울은3차전도여행의 귀환길에 잠시 드로아(트로이)에서 머물게 됩니다. 바울은 일정이 바빠 밤늦게까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집회에 참석했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공동체에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오늘 이 사건은 이 시대 다음세대들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믿습니다.

 

창문에 걸터앉아 있었던 청년은 마치 좌표를 상실한 세대, 자리를 이탈한 세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앉지 말아야 할 자리에 위태하게 걸터앉아 있는, 한 발은 세상에 다른 한 발은 교회에 걸치고, 왔다 갔다 하는 적당하게 타협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런가하면 졸음을 이기지 못한 청년은 지쳐있고, 나약하고, 무관심하고, 지루해서 졸고 있는 세대, 깨어있지 못한 세대들의 비행과 좌절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하면 비전을 상실한 세대 말입니다. 따라서 유두고는 이 시대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다음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안 창문에 걸터앉아 졸고 있는 세대들의 문제는 과연 누구의 잘못입니까? 월요일 아침이었답니다. 목사님이 일이 있어서 여집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집사님 평안하시죠?” “목사님, 저 어제 밤 잠 한 숨도 못 잤습니다.” “아니, 왜요?” “이게 다 목사님 때문이죠.” “아니, 왜요?” “어제 설교시간에 잘 재워 주셔서 밤에 잠이 와야 말이죠?” ㅎㅎㅎ. 목회자 때문인가요? 본인뿐만 아니라 교회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다음세대가 방향을 잃고 졸다가 떨어지면 오늘 본문에 나와있듯이 ‘떨어져 죽었는지라,’ 결국은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세대의 아이들이 단순히 창문에 걸터앉아 있거나, 졸고 있는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떨어져 죽게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죽어가는 세대, 추락하는 세대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결국 공동체에 커다란 위기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코스타 갔다가 LA에서 오신 강사분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안디옥교회 다음세대 목회에 대해서 고민을 이야기 했더니 깜짝 놀라시는 겁니다. LA 대형교회들도 지금 청년들이 없다는 거에요. 100명 넘게 모이는 교회가 손꼽을 정도랍니다. 부모들이 다니는 교회에 나오는 청년 숫자는 사실 믿을 수 있는 게 못되죠. 억지로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니까. 부모없이 혼자서 나오는 청년들의 숫자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전도가 되어 신앙생활에 대한 필요를 아는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나온다고 여겨지니까요. 우리 안디옥교회는 그래서 아주 특별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안됩니다. 다음세대를 위한 사명을 중단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2. 다음세대를 살리는 가정, 교회,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두고를 살리자!’ 그렇습니다. 다음세대를 살려야 합니다. 어떻게 살려야 합니까? 사건속에 해답이 있다고 봅니다. 바울이 ‘강론할새.다음세대들이 말씀으로, 교육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사람의 죄성을 끊어버리고 빛가운데로 나오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말씀으로 변화가 됩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생각이 변화되고, 행동이 변화되고, 습관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또한 죽어가는 다음세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몸으로 다음세대를 안고가야 합니다. 이런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요즘 애들 별나. 우리 때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대다. 은혜도 모른다. 버릇이 없다. 가능성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안고 품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다음세대를 살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 많은 기관과 교회들안에 다음세대들이 없는 것일까요? 다음세대를 이해도 못하지만, 감당을 못하는 겁니다. 다음세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따라서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적당히 물주면 자라나는 콩나물이 아닙니다. 헌신과 수고와 봉사, 더 나아가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교회안에도 우선순위가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세대들을 우선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겁니다.

 

텍사스 달라스에 가면 수천명이 모이는 뉴송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아주 특별한 면이 있는데, 본당을 젊은이들에게 내어주고 자신들은 불편을 감수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나라로 성장한 이면에는 못먹고 못써도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과 희생을 감수한 부모님들의 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난속에서도 자식유학을 보냈어요. 결국 돌아온 젊은이들이 나라를 일으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선교 일순위 비전처럼 ‘젊은이를 키워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교회가 됩시다.

 

3. 살아난 청년으로 위로를 받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저를 비롯한 이민 1세대의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차세대의 방황과 부재. 이것이 가장 심각하고 큰 문제 아닙니까? 다음세대가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12절 함께 읽습니다.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살아난 청년으로 하여금 공동체는 적지 않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살아난 다음세대들로 인하여 위로를 받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1,2,3세대가 함께 세워져가는 공동체를 향하여 달려갑시다. 따라합시다. ‘다음세대가 곧 미래요, 힘이요,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