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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이유 Reason for happiness

글쓴이 :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날짜 : 2016-02-14 (일) 08:47 조회 : 1957
설교일 : 2월 14일
설교자 : 한흥렬 목사
본문말씀 : 전 Ecc 3:11-13

행복의 이유 Reason for happiness

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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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느 때 보다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행복에 대한 말씀을 좀 나누고 싶습니다.


파랑새 행복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혹은 파랑새 증후군. 벨기에의 작가 마테를링크(Maeterlinck, 1862-1949)가 지은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파랑새’입니다. 파랑새의 주인공 치르치르와 미츠르 남매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생하면서 먼 곳까지 가보아도 파랑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자기 집 처마 밑에서 즐겁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책의 말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니 저것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아닌가? 우리는 아주 멀리 가서 찾았지만 사실은 여기 있었구나.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그 파랑새는 바로 자신의 집에 있었다는 동화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행복하십니까? 그렇다면 행복의 이유, 그 근거를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1. 영원을 사모하므로(11)

 

오늘 본문 11절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음을 믿고, 영원한 것을 사모할 줄 아는 인생이 행복하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비극은 자신을 하나님으로 착각한 일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찬양하기 시작하다보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순투성이고, 부족하니 그 욕구를 채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슬프고 불행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할 수 있다는 것, 신앙이 있다는 것, 그것이 행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아셀지파를 축복하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33:29).

 

오늘도 사람들이 행복의 이유를 물어올 때 “주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2. 기쁨으로 선을 행하므로(12)

 

선을 행하면 마음에 기쁨이 오고, 마음에 행복이 깃듭니다. 착한 일을 하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본질상 선()이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처럼 우리에게도 선행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에, 우리는 자연히 선행을 하면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다른 사람을 짓밟아 이기고, 모으고 또 모으고, 움켜쥐고 펴지 않는, 욕심으로 가득찬 인생에는 결코 행복이 없습니다.

 

또한 선이 아닌 죄악을 즐기는 자는 결코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이 죄가 가져다주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2:10은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라즈니시의 「행복론」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한 부자가 친구에게 『사람들은 내가 죽을 때 전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미리 유언한 것을 알면서 왜 나를 수전노라고 비난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돼지와 암소이야기」를 했습니다. 『돼지가 암소에게 불평했지.나는 사람들에게 베이컨과 햄,심지어 발과 털까지도 제공해.그런데 사람들은 왜 나를 비난하지? 암소가 말했다.그건 너는 죽어서 제공하지만, 나는 살아 있을 때도 유익한 것을 제공하기 때문일꺼야』.

 

바로 오늘 작은 선행을 시작해 보십시오. 행복이 쌓여갈 것입니다.

 

 

3.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므로(13)

 

그렇습니다. 행복의 이유과 근거는 첫째, 영원을 사모하는 신앙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기쁨으로 선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13절 ‘땀 흘리고 일하여 수고의 기쁨으로 떡을 먹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돈을 벌기는 힘들어도, 애쓰고 수고하여 땀 흘린 후에 얻은 것을 가지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먹고 마시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었죠. 그래도 하루종일 일하고 저녁에 밥상에 둘러앉아 김치찌개 한가지해서 밥을 먹으면 그게 꿀맛이었죠. 요즘은 고기반찬에 고기국을 먹어도 그 맛이 없어요.

 

요즘처럼 일자리가 없고, 일해도 소득이 적을 때 더욱 느끼는 것이 이것일 것입니다. 일자리를 잃어버리기 전에는 내가 다니는 일터가 귀한 줄 몰랐어요. 수고하고 땀흘리는 것이 감사요,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짜증내고, 불평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많은 소득이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땀흘리며 일해서 가족들과 함께 기쁨으로 저녁상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은 감사할 때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과는 반대로 우리말에 불한당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불한당 같은 놈들.’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하죠? 깡패들. 일도 안하고 거저먹고 즐기려는 자들. 요즘 현대인들은 ‘불한당 증후군’이 다분히 많은 것 같습니다. 쉽게 일확천금 벌려고 하고, 일도 안하고 남의 것을 이용해서 이익을 보려고 하죠.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땀흘려서 일하고, 그 수고의 분깃을 먹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어요. 그 원리에 역행할 때 행복은 파괴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는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 그냥 지나쳐버리는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 행운을 좇으며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의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 일상의 삶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도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5:18은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그런데 일도 지나치면 행복이 무너집니다. 왜 일을 지나치게 합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으로 지나치게 일함으로 하나님을 섬길 시간도 없고, 이웃을 돌볼 시간도 없고, 가족들과도 즐겁게 보낼수 없다면 그 노동, 일은 선한 것이 아닌 욕심이며 허영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버드대학에서 ‘행복학(Happiness) 열풍을 불러일으킨 탈 벤 샤하르 심리학과 교수의 강의는 동대학 마이클 샌델의 ‘정의(Justice)강의와 예일대학교 철학과 셸리 케이건의 ‘죽음(Death)’강의와 함께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의라고 불리웁니다. 그의 ‘행복학’ 수업은 하버드대학 전체 재학생의 약 20퍼센트가 수강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강의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책 ‘해피어(Happier)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에 따라 4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구분합니다. ,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성취주의자’, 현재를 위해 미래를 망각하는 ‘쾌락주의자’, 현재도 미래도 포기한 ‘허무주의자’, 현재의 즐거움으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진정한 행복주의자’입니다.

 

행복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영원을 사모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기쁨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수고하고 기쁨으로 그 떡을 먹는 것이 행복입니다. 이와 같은 현재의 즐거움으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진정한 행복주의자’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