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못하는 이유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조회 : 607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못하는 이유 Why people don't come to God willingly

Lk 15:11-32

======================================================================

<탕자 이야기2> 탕자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두 번째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선뜻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할 때의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1. 정죄(Condemnation) 때문입니다.

정죄가 무엇입니까? 정죄란 '죄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는 4가지의 정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자기 양심의 정죄 : 작은 아들

18-19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 타인의 정죄 : 큰 아들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 사회적 정죄 : 사람들의 태도나 규범들

15-16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쥐엄나무를 히브리어로 haruvim(carob)라 하고, 메뚜기hagavim(locust)라 합니다. 3:4‘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라는 대목의 메뚜기는, 성경을 옮겨 쓸 때 'r'자를 'g'자로 잘못 기록하여 성지(광야)에 흔한 쥐엄나무 열매가 메뚜기로 잘못 기록되지 않았나 하는 논란이 있습니다. 초기의 기독교인들이 쥐엄열매를 '세례요한의 빵'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옵니다. 지금도 뉴욕의 시장에서 쥐엄열매를 '세례요한의 빵'이라 하며 팔고 있다고 하네요. 영명은 locust tree(메뚜기 나무)라 하는데, 세례요한의 식량인 메뚜기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우리는 중국 성경을 번역할 때 콩꼬투리가 비슷한 주염나무를 연상하여 쥐엄나무 또는 주염나무로 붙였다 합니다. 사람이 잘 먹지 않는 돼지나 먹는 하찮은 별 볼일 없는 열매였습니다.

 

더부살이를 하는 주인이 일을 시키고도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고 차별대우를 합니다.

쥐엄나무 열매처럼 오갈 때 없는 ‘가치 없는 존재,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당합니다.

‘너는 그런 사람이니까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회적 정죄 말이죠.

 

4) 종교적 정죄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어떻게 보면 가장 무서운 정죄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 같은 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전에 나아갈 수 없어.

 

15장 배경인 ‘잃어버린 양, 드라크마, 탕자의 비유’는 누구를 상대로 하신 말씀인가요?

 

15:1-3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죄인들과 함께 앉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2: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정죄들로 인하여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 의심하게 됩니다.

 

 

2. 오히려 죄인이기 때문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2) 하나님은 죄인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3) 예수님께서 죄로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2:11-14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4) 오히려 스스로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 의로움에 도취되어, 나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19:20 (선한)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3. 회개가 닫힌 문을 엽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려 할 때 막힌 문을 여는 것은 회개입니다.

 

요일 1:8-9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둘째 아들은 회개했습니까? ‘돌아가리라. 아들이 아니라 품꾼의 하나로 여겨달라.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4. 하나님의 사랑을 능가할 죄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용서 할 수 없는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죄와 허물을 덮습니다.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탕자를 용서하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시는 아버지, 그 분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요한1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