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시리즈4 다시 산 아래로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조회 : 90

산 시리즈

4. 다시 산 아래로 Back down the Mountain

누가 Lk 9:28-37

=================================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마운틴 시리즈, 오늘은 마지막 네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오르신 말씀입니다.

 

 

1. 왜 주님이 산에 오르셨을까요? 제자들과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주님은 그냥 산을 등반하기 위해 가신 게 아니라 제자들과 기도하기 위해 가셨습니다. 주님은 자주 산에 가셨습니다. 감람산에는 습관적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지난주에 말씀을 나눈것처럼 감람산에서 기도하시다 체포되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한번은 바다 위를 걸어 풍랑만난 제자들에게 주님이 오셔서 구출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산에서 홀로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의 미명소리를  듣고 오신 겁니다.

 

* 우리도 산 아래만 있지 말고 때론 산에 올라가 기도합시다.

산 기도가 잘 됩니다. 그런데 에드먼튼에는 오를 산이 없네요.ㅎㅎ

 

* 기도할 때 우리는 사람을 의식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집중 안 됩니다. 우리는 자꾸만 사람 들으라고 기도합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인데, 오직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께만 집중하려면 산이나 골방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정직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남을 의식하게 되면 기도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라고 하면 자꾸만 시를 쓰게 되는 겁니다. 적나라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 일상적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에 못 올라가면 골방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고독한 단독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라고 한 것입니다

 

* 기도는 때 묻은 일상에서 벗어나 구별된 성소에서 바치는 겁니다. 그래야 정말 기도다운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금식하며 기도하고, 새벽에 나와 기도합니까? 일상에서 구분된 시간과 장소를 찾다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새벽기도에 나오는 것은 높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성역이 필요한 겁니다. 골방이 필요한 겁니다. 그것 찾다 보니 산에 오르게 되는 겁니다. 주님은 산뿐만 아니라 광야나 들에도 홀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하여간 일상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찾으신 겁니다. 그래야 세상살이에서 거칠어진 우리의 심성이, 우리의 영혼이 정화됩니다. 얼마나 우리의 심령이 거칠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감람산에서 기도는 하지 않고 졸거나 자고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잠에 떨어질 수밖에 없고,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시험에 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2 가지 체험을 하게 됩니다.

 

1) 첫째는 보는 체험입니다.

29-32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제자들은 산에서 놀라운 신비로운 체험을 했습니다. 주님의 용모가 변한 겁니다. 주님의 얼굴과 옷에서 빛이 났습니다. 저 산 아래서는 미처 그런 모습을 뵙지 못했는데, 산상에서 그런 신비체험을 한 겁니다. 또한 구약에서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를 만난 겁니다. 이 얼마나신비로운 현장입니까. 이것을 경험케 하기 위해 주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신 겁니다. 그것도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때론 이런 체험이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너무 황홀해서 여기에서 살자고 합니다. 이 신비체험 속에 마냥 있고 싶다고 했습니다. 신앙세계에는 분명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이 있습니다.또 가끔은 이런 현상이 필요합니다. 주님도 그것을 인정하셨기에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 이런 신비를 체험케 하신 겁니다. 아마도 이 체험 후로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의 신앙이 한결 깊어졌을겁니다. 모세도 시내산에 올라 40일동안 하나님의 면전에서 대화하며 살았습니다. 그러고 내려오니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나서 사람들이 범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모세가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고 했습니다. 신비체험은 우리 신앙의 깊이를 더합니다. 방언 못하던 사람이 방언만 해도달라집니다. 환상 못 보던 사람이 환상만 봐도 신앙이 달라집니다.

 

2) 둘째는 듣는 체험입니다.

34-35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제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생생한 육성을 들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제자들은 산 아래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오르자 듣게 된 겁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이런 음성을 듣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소란합니다. 세상에는 소음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일상과는 구별된 높은 산, 지성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 음성이 세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육성을 듣기 위해섭니다. 우리가 기도원에 가는 것은 기도도 하고말씀을 들으러 갑니다. 정말 산 아래서는 미처 듣지도 받지 못했던 은혜를 체험하고 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육성을 변화산상에서 들은 겁니다. 그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평생 잊지 못할 하나님의 음성이요 말씀아니었겠습니까. 평생 가슴에 담아두고 살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5:3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신명기 28:2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일상과는 확실하게 구별된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이런 세미한 음성, 하나님의 뜨거운 육성을 체험하는복된 성도들 되십시다.

 

 

3.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여기서 초막 짓고 살자고 하니 주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36-37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베드로의 제안을 거절하시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는 이게 안 됩니다. 우리는 산상에서 신비체험하면 자꾸만 거기 살려고 합니다. 산 아래로 안 내려 오려고 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그런 제안을 묵살하십니다. 우리는 당장에 거기에 초막도 짓고, 기도원도 짓고 세상모든 사람들을 거기에 불러 들입니다. 마태복음 17 9절에 보면 주님은 오늘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 용모가 변화된 것, 모세와 엘리야를 만난 것을 발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신앙에는 신비체험이 있습니다만, 기독교는 열광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때로 산이나 들로 나가 고독하게 기도하기는 하지만, 은둔주의도 아닙니다. 주님은 결코 은둔주의를 강조하시지 않았습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셨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자고했습니다.

 

주님이 산에서 내려오자 어떤 아비가 귀신들린 자기 아들 고쳐달라고 남은 제자들에게 데려와서 제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그런 겁니다. 산 위에는 멋지지만, 산 아래는 악한 권세에 휘둘리는 아비규환입니다. 그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하라는 게 바로 주님의 뜻이요, 이게 기독교입니다. 주님은 고행도 금욕도 은둔주의도 기도원에서만 사는 것도 바라지 않으십니다.

 

 

4.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산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높은 곳으로, 그러나 우리의 손발은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현실을 떠나면 공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산에 올라갔는데 안내려와요,

아직도 산을 타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1:6-11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왜 하늘만 쳐다 보느냐? 하십니다.

 

은혜 체험, 말씀체험, 기도체험 했으면;

 

+교회중심에서 삶의 터전으로

+모일 때와 흩어져야 할 때

+ 듣지만 말고 전해야

+하나님 나라를 세상 한 가운데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 높은데로만 향할 때 교만해지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

우리의 마음을 낮추어야 한합니다. 그러면 겸손해집니다.

 

 

 

다함께 찬양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