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t6 무너진 관계를 재건하라

에드몬톤 안디옥 교회 조회 : 275

Re:Set 6

무너진 관계를 재건하라 Rebuild broken relationships

At 15: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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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도형있듯, 우리는 저마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관계하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모양들을 저마다 가지고 있습니. 왜 그럴까?

 

의외로 이런사람이 많습니. "사람이 싫어요."   그럴까요? 상처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계를 잘 맺지 못하면 우리인생은 풍요로울수 없습니.

왜냐하면 인생이란 관계속에서 태어나, 관계속에서 자라고 성장하며, 결국 관계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관계, 친구관계, 스승관계, 이성관계, 동료관계, 부부관계... 관계의 연속입니다.

 

2. 그러므로 관계가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합니다.

내면이 무너져있으면 성공하고도 불행한것처럼, 관계가 무너져 있으면 성공하고도 외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계를 잘 맺고 살면, 힘이 납니다. 즐겁습니다. 행복이 배가 됩니다.

 

중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일하고 계신 형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나라 모두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 알고 있는 꽌시, 관계가 비지니스 뿐만 아니라 문화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리온 기업이 성공한 이유는 기존의 제품명을 중국식 이름으로 변경하여 ‘좋은 친구’의 이미지로 성공적인 브랜드 현지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중국과 좋은 친구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꽌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중국인이 선호하는 붉은색으로 포장을 바꾸고 부제를 ‘정(),affection’에서 ‘어질 인(),venevolent’으로 대체했다고 합니다. 최근 시진핑은 꽌시문화가 적폐문화, 부폐의 온상이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합니다.

 

관계의 영역 1나와의 관계, 2차 너, 타인과의 관계, 3사물과의 관계, 더 나아가 믿음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관계해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습니.

 

그렇다면, 여러분의 관계는 행복하십니까?

 

3. 그토록 훌륭했던 사도바울도 관계로 인하여 고통스러웠던 때가 있었습니.

마가와 사울의 관계는 1차 전도여행 때의 갈등으로 인해 분열의 상태에 빠집니다.

가장 친한 동역자 바나바와도 힘든관계가 되었습니.

관계가 힘들면 이처럼 우리의 삶도 고통을 받게 됩니다.

 

본문에서 바나바와 바울이 같이 전도여행을 하다가 두 사람이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마가 요한이라는 청년 때문이죠. 마가 요한이라는 젊은이가 전도여행 하다가 그만 무단이탈을 했습니다. 땡땡이를 친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은 아주 단호한 사람입니다. 엄격한 사람이고 목적지향적인 사람이고. 그러니까 바울은 이렇게 성실하지 못한 사람을 데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이 사람 데리고 가지 말자. 이것이 바울의 지론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기독교는 바로 이런 사람을 받아주고 이런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기회를 줍시다 데리고 갑시다. 그래서 둘이 싸우게 되었어요. 바울과 바나바가.

 

여러분, 누가 옳습니까? 바나바가 옳습니까 바울이 옳습니까? 대답해 보시죠. 둘 다 옳아요? 그러나 선택한다면 어느 것이 옳은 것 같아요? 바나바적인 사람은 바나바가 옳다고 그럴 것이고 바울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바울이 옳다고 할 것입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예요. 방법론의 차이예요. 사고의 전망의 차이예요. 이것을 가지고 어느 쪽이 옳았다 틀렸다 옳고 그름의 차이로 접근하면 안 된다 말이죠. 그러나 항상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전제에서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이 있어요. 참 문제예요.

 

심리학자 해리슨 이라는 사람이 쓴 책 가운데 유명한 I'm OK You're OK 라는 책이 있습니다. 나도 옳고 당신도 옳을 수가 있다. 이건 건강한 사람이예요. 또 나도 틀릴 수가 있고 당신도 틀릴 수가 있다. 이것도 건강한 사람이예요. 그런데 문제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I'm OK. You're not OK. 나는 OK 인데 네가 틀렸다. 항상 자기가 정의예요. 자기가 정의의 잣대, 다른 사람은 항상 불의한 거예요. 단순한 방법론의 차이, 주관적 해석의 전망의 차이를 가지고 자기는 정의예요 항상 다른 사람은 불의예요. 항상 정의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 공격하는 항상 공격적이고 파괴적이고 비판적인 그런 이론을 진술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심리 학자들 정신의학계에서는 이런 사람을환자라고 봅니다. 병자라고 봐요. 치료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으면 자신도 불행하고 공동체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예요.

 

아니면 이런 좁다란 렌즈를 갖고 사는 사람들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살면 돼요. 그런 공동체에 속하면 되는 것이예요.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굉장히 공동체의 삶을 부조화스럽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건강한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잘못할 수가 있습니다. 틀릴 수가 있어요. 나도 잘못 할 수가 있고 당신도 잘못할 수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건강한 대안을 함께 현실적으로 모색할 줄 알아야 돼요. 나는 정의고 당신은 불의요 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더 좋은 의견을 찾아 보십시다. 이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할 줄 아는 사람들, 이것이 지혜롭게 인생을 사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오늘 좀 지혜를 주셔서 참 갈등 많은 인생의 현장에서 이런 현실적 대안을 찾아갈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군생활 경험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북한공산당, 적군이 아니었습니.

함께 생활하는 동료, 상하관들과의 관계였습니. 가정생활도 관계때문에 힘들어요.

교회생활도 하나님과의 문제아닌 교우들과의 관계때문에 힘들때가 많을 입니.

목회자인 저도 교인들의 관계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4. 사도바울은 어떻게 관계를 회복했을까요?  

1) 안보면, 단절하면... 되나요? 물론 일시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관계 불변의 법칙, 꼭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요. ㅎㅎ

방학인데 집에 안가는 청년의 이유, 알고보니 가족관계로 극심한 상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간다고, 안보면 다 끝납니까? 가족인데사랑하는 사람만나서 결혼가게 되니까 결국 양가가 만나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아내 될 사람이 지혜로왔어요. 중간에서 부모와 남친을 잘 화해시킨거에요. 중간에 있는 사람이 참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중간에 있는 사람이 나쁘면 좋은 관계도 틀어지게 만듭니다. 더 멀어지게 해요.

 

2) 우리에게도 좋은 중매자가 계세요.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보혜사,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영, 권면하고 화해케 하는 예수님이 보내주신 화해의 영.

 

후일 바울은 바로 화해케 하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예전 자신을 보게됩니다

나만 옳다고, 너희들은 틀렸다고.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 잡아다 죽이고 했잖아요. 그런데 돌아보니 '아하! 나는 왜 항상 나중심적일까?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바나바는 다 받아주었는데나의 나된 것이 허물 많은 나를 불러 덮어주신 주님의 용서와 사랑, 주님의 은혜 때문인데 …’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오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 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는가?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3) 이후 각자가 성령의 지배속에 성숙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극적인 관계를 재건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마가를 나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벧전 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0여년후 마가는 로마 옥중(1차투옥)에 있는 바울을 돕고 좋은 협력자가 됩니다( 4:10, 1:24). 바울은 마가를 인정하면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마가를 기꺼이 맞아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바울은 마가 일행(유스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가 되었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참된 위로가 되었다고 피력합니다( 4:10-11).

그리고 로마감옥에 2차 투옥되어 순교를 앞두고 있을 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무익이 아니고)하니라(딤후 4:11b)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 파피아스(Papias)에 의하면, 마가는 바울의 사후 로마에서 사도 베드로의 통역을 맡은 것으로 전해집니.

 

파피아스에 의하면, 베드로를 통해 최초의 원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마가복음을 베드로복음이라고도 부릅니다.

 

만약 둘 사이에 관계회복이 안되었다면 … ?

 

5. 관계속에서 누구나 부족합니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통하여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성숙해야 합니다.

 

6. 더 적극적으로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관계훈련을 받으십시오.

우린 결코 나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홀로 인생, 나홀로 신앙생활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맺는 훈련 부족합니다.

어른들이 애들 싸우는 것 보면서 그럽니다. 그냥 놔 둬. 그러면서 크는 거야.

 

 <헌신과 결단>

모든 관계속에서 축복된 만남을 갖게 하소서.

무너진 관계가 있다면, 용서 화해의 힘을 주소서.

관계회복.관계치유 되기 원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옵소서.

미숙합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변화되고, 성장하고, 성숙되기 원합니다.  

힘들어도 관계맺는 훈련을 통하여 튼튼하고 건강한 관계 만들어 가게 하옵소서.

 

<다함께 찬양>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https://youtu.be/fH-b4bLJ6jw